“범뼈는 금값 버금가니, 범그림으로 잡귀 쫓아야겠다”
“범뼈는 금값 버금가니, 범그림으로 잡귀 쫓아야겠다”
  • 윤덕우
  • 승인 2021.01.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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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계견사호
문에 붙인 그림 ‘문배도’
“부정은 막고 복 긁어보자”
닭 머리 달고 복조리 걸고…
비싼 동물 대신 그림 활용
19세기에 등장한 ‘계견사호’
닭·개·사자·호랑이 그림
새해 밝히는 닭·불운 쫓는 개
요즘 필요한 ‘수호신’ 아닐까
봄소식 (천상병)

입춘이 지나니 훨씬 덜 춥구나!/ 겨울이 아니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 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며/ 그건 대지의 작란作亂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봄의 시작을 알리는 천상병의 시로 시작해본다. 이제 곧 ‘입춘’이 다가온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다. 이제 진짜 새로운 한해의 시작이지!

흔히 ‘입춘’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일 것이다. 한 해의 길운을 기원하면서 쓰는 글이며, 그 뜻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입춘대길(立春大吉)의 ‘입’자가 왜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자를 쓰는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이것은 봄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 준비된 것을 시작한다는 의미의 설 입(립立)‘을 사용한다고 한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의 입춘첩.한 해의 길운을 기원하면서 쓰는 글이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보통 축원과 액막이를 목적으로 대문이나 대들보, 천정, 문설주 등에다가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춘첩이라고 하여 부적처럼 회화나무를 원료로 하여 노란 물을 먹인 괴황지에 경면주사로 글씨를 써서 붙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입춘시, 그러니까 해가 지는 시각인 18시 02분(입춘 당일에 시(時)를 맞추어 붙여야 효험이 있다고 함)에 정확하게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입춘첩2
입춘첩.

대문에 붙은 저 그림을 보자. 호랑이등을 탄 레이저 눈빛의 매를 보시라. 저집의 문(門)을 들어설 때는 살짝 긴장감이 돌기도 하겠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문(門)을 사람의 출입뿐 아니라 복이나 재앙도 문(門)을 통해 들어오거나 나간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선조들은 집안의 모든 길흉화복이 문(門)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인식 때문에 행복이 문(門)으로 들어오길 바라고 악운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문 앞에서 복을 비는 다양한 의례를 행하거나 그림과 글귀를 붙였으며, 그리하여 문(門)에 관한 여러 민속과 풍습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를테면 새해에는 복 받기를 바라고 재앙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의례를 행하는 한편, ‘수성노인 그림’, ‘까치호랑이 그림’, ‘용 그림’ 등의 그림을 어김없이 붙였다. 또한 입춘을 맞이해서는 대문이나 벽에 입춘방立春榜(또는 立春帖, 春帖子)을 붙였다. 이런 형식의 그림을 우리는 문배도(門排圖)라고 부르며 문에 도배하듯 풀을 먹여 붙인 그림을 말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민화의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찍부터 우리 선조들은 건강과 집안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문 앞에서 여러 가지 제의적 성격을 가진 행위를 벌이거나 문에 특별한 사물(그림 또는 글씨)을 설치해 왔다. 물론 이와 같은 행위나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 설치한 것은 복이 문으로 들어오지만 잡귀나 악운도 이곳으로 침입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문(門)은 집안의 통로이자 집안의 상징이며 중요한 방어기능도 가지고 있다. 문배는 이와 같은 문(門), 즉 ‘공간’과 그 공간을 구역화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배의 풍습은 짐승의 피를 문이나 벽에 바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출입하는 문에 닭의 피를 바르거나 닭의 머리(鷄頭) 또는 범의 뼈를 걸어두었으며, 엄나무 가지, 빗자루, 복조리 등을 걸어두기도 했다. 엄나무 가지를 다발로 걸어두는 것은 굵은 가시가 촘촘하게 돋은 것을 보면 잡귀가 겁이 나서 달아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빗자루를 걸어 두는 것은 집에 해가 되는 것을 비로 쓸어내듯이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밖에 복숭아 가지, 버드나무 가지, 소나무 가지, 쑥 다발 등을 문 위에 걸어두기도 했는데 이 역시 잡귀와 부정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흥미롭게도 바다가 인접해 있는 어촌에서는 대문 처마에 큰 게를 매달아 두기도 했는데, 이는 게의 집게다리가 힘이 뛰어나기 때문에 들어오는 잡귀를 그 다리로 꽉 붙들어달라는 믿음에서였다. 또한 아이를 낳으면 문에 금줄(禁줄, 또는 人줄)을 걸어 놓은 것도 역시 잡귀와 부정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즉 아이를 낳은 집 대문간에 새끼로 꼰 금줄을 걸어둠으로써 출생을 알리는 동시에 타인의 출입과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범 뼈를 걸어 놓고 싶었지만 범 뼈는 금값에 버금가기 때문에 이를 구하지 못하는 집에서는 엄나무 가지 다발, 빗자루, 복조리 등 다양한 보조적인 장치로 대신하거나, 범 뼈만이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집에서는 범에 관련한 그림이나 글귀로 대신하여 잡귀를 쫓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벽사 그림이나 글귀는 복을 빌기에 더욱 편리하였으므로 필연적으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이런 이유로 차츰 잡귀를 물리치는 부적이나 그림을 붙여서 악운을 쫓으려는 문배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문배도
계견사호(鷄犬獅虎) 1888년경 지본채색 32.0cm x 30.0cm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 소장.

계견사호(鷄犬獅虎)란 닭·개·사자·호랑이가 한 세트를 이룬 그림으로 서울의 풍물을 읊은 ‘한양가 (漢陽歌,1844)’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계견사호는 18세기 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며, 19세기 이후 등장하여 다락벽에 붙이는 용도의 그림으로 소개되었다. ‘한양가’가 1844년(헌종 10)에 간행되었으므로 이 기록 속의 계견사호 그림은 19세기 전반기의 시전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계견사호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닭(鷄)은 한 발로 땅을 딛고 선 측면의 모습을 그렸고, 배경이 간략히 들어가 있다. 닭의 형상을 단순화시켜 도안하듯 그렸으며, 색감과 조형성이 뛰어나다. 개(犬)는 앞발을 세우고 앉은 모양이다. 목에 줄목걸이와 장식물이 달려 있고, 배경에 오동나무가 그려져 있다. 사자(獅)는 네발로 선 동세에 부분적으로 화염뭄(火焰文)이 들어가 있다. 호랑이(虎)는 네발로 딛고 서있으며, 배경에 소나무가 그려져 있으나 까치는 그리지 않았다. 계견사호의 호랑이는 까치호랑이와 계통이 다른 그림이다.

홍석모가 쓴 ‘東國歲時記’의 입춘에 써 붙이는 입춘첩(立春帖)에는 닭과 개에 관하여 “닭 울음소리에 새해 덕이 들어오고, 개 짖는 소리에 묵은 해 재앙이 나간다.(鷄鳴新歲德 犬吠舊年?)”라는 글귀가 있다.

닭은 새해를 밝히는 덕의 의미가 있고, 개는 지난 한 해의 재액을 말끔히 내보낸다는 뜻인데, 견사호의 닭과 개 그림에도 함께 통용될 수 있는 의미로 읽힌다.
 

문배도
우리집은 내가 지킨다. 이전경 작 2009년 저작권등록번호 (제c-2017-004293-6)

일찍부터 우리 선조들은 그림이나 글귀를 집안이나 대문에 붙여 가택을 보호하도록 했으며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고 자손 번성을 바랐다. 그런데 시대가 바뀐 오늘날에도 이러한 염원은 달라지지 않았고, 어쩌면 오늘날은 더욱더 그러한 풍습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우리는 현대의 바쁜 삶 속에서 너무나 싫었던 경험들을 많이 겪었고,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어 시들해져 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야기되는 갈등, 놀람, 불안, 초조, 짜증 등의 스트레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 모두 잊고 살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고와 재난에 휩싸여 사는 것이 현실이다. 민화는 바로 이러한 현대의 바쁜 삶에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나 무병장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것으로 여전히 필요한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집은 내가 지킨다.’에 나오는 계견사호는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수호신이 아닌가 싶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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