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년의 리뷰, 대구가 잃은 것과 얻은 것들
코로나 1년의 리뷰, 대구가 잃은 것과 얻은 것들
  • 승인 2021.02.0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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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호 달서구사회복지협의회장 월성종합사회복지관장
2월 18일, 대구에서 코로나19 최초확진자 발생 딱 1년이 된다. 그 동안 대구는 많은 것을 겪었다. 이전에 경험하거나 상상해 보지 못했던 낯설고 불편한 것들이다. 만남과 모임은 줄었고 만나도 접촉을 피했다. 복지시설은 고립되고 어린이집과 경로당은 문을 닫았다. 학교도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대면 서비스업의 초토화는 자영업자와 종사자의 생존을 위협한다. 일상의 삶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이다.

어디 이 뿐일까? 지난 1년을 되돌아 보면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대구를 휩쓴 팬데믹의 공포는 관용과 포용을 잃게 만들었고 대신 혐오와 멸시를 낳았다. 작년 봄 텅 빈 도심과 인적이 끊긴 대구의 거리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엄습했다. 분노의 임계점에서 분출구가 필요했고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공포의 시발점이 된 운 나쁜 종교단체가 마녀로 지목되었고 그들을 향한 돌팔매와 손가락질은 한참 계속되었다. 우리 안의 마녀를 사냥하는 동안 대구를 향한 또 다른 혐오와 멸시도 경험했다. ‘대구봉쇄’를 입에 담은 권력집단도 있었고 입원환자를 위한 ‘병실’을 지원해 달라는 대구시장의 절박한 호소에 병실은 말고 ‘환자이송용 헬기’를 지원하겠다는 정치인도 있었다. 공포에 질린 대중 앞에서 협력과 지원이 필요한 대구시민에게 멸시와 냉소의 힘자랑 쇼를 시연한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지금 유력한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라있기도 하다.

또 하나. 코로나 공포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너무 쉽게 허용하고 있다. 방역을 앞세우면 안되는 게 없는 지금이다. ‘행정명령’이라며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영업장의 문을 닫네 마네 한다. 방역 만능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너무나 가볍게 여긴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대신 권위주의, 전체주의 그림자가 사회 전반에 드리우고 있다. 사생활과 종교활동을 포함한 기본권조차 고민도 없이 무시해 버린다. “국민의 생명을 위해 지금은 코로나19 방역이 최우선”이라는 당국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는 틀리다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어떤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순교한 이들도 있고 정치적 압제에 저항해 목숨을 내던진 이들도 적지 않다.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오래 전 국가안보를 위해 또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유린됐던 때다. 지금의 정권실세들 상당수는 여기에 저항했던 사람들이다. 맞으면서 배우고 싸우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흘러간 줄로만 알았던 권위주의 시절의 데쟈뷰를 코로나 때문에 다시 만날 줄 몰랐다.

다행히 지난 1년의 시간에 대구가 얻은 것도 작지 않다. 무엇보다도 협력과 연대의 시민정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구시민은 공포와 두려움의 그림자 속에서도 자기통제와 서로를 위한 연대감으로 이 위기를 헤쳐나갔다. 폭발적인 대확산에 맞서 대구의 시민사회는 훌륭한 대처능력을 보여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제력이 동원되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은 병원을 통째로 내놓는가 하면 신속한 진단검사를 위해 드라이브 스루라는 기발한 방식을 도입했다.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헌신적인 대응력과 함께 대구시를 비롯한 공적조직의 효과적인 대처도 박수 받을 만하다. 폭증하는 감염자를 관리하기 위해 생활치료센터를 신속히 설치하고 수많은 격리자를 관리 지원하는 일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시설과 시설종사자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요양원과 같은 취약시설은 시설장과 종사자들이 스스로 코호트 격리를 자청했고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 같은 이용시설도 긴급돌봄과 지역사회 취약계층 보호에 역량을 집중하였다.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대구시민의 자발적인 협력과 참여다. 어떤 명령이나 강제력 없이도 스스로 역내와 역외로의 이동을 줄였고 모임과 행사는 취소 축소하였다. 서로를 위해 마스크를 썼고 기꺼이 불편함을 감내하였다. 감염병 대응을 위해 가용가능한 자원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결과 50여일 만에 대구는 대유행을 저지할 수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이 적지 않다. 망가진 생업과 끊어진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지금은 막막할 뿐이다. 그래도 이 또한 이겨내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코로나가 던져준 혐오와 멸시, 민주주의 퇴행을 부릅뜬 눈으로 경계하면서 시민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지킨 지난 1년의 세월을 자산으로 삼아 이 위기를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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