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자세히 살펴라(聆音察理)
남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자세히 살펴라(聆音察理)
  • 승인 2021.02.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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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아이가 세 돌도 훨씬 지나서 처음으로 발음이 분명치 않게 말을 시작하였다. 집 나이로 다섯 살이면 늦지 않은가? 어눌하기는 하지만 방안에 붙여놓은 그림에 있는 글자, 숫자, 알파벳을 짚어가면서 리듬을 타면서 읽었다. 말과 동시에 글자까지 알았다.
엄마는 '휴우!'하고 안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첫째 아이는 말을 일찍 시작하고 39개월 만에 혼자서 동화책을 줄줄 읽었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말이 늦어 걱정을 많이 하였던 듯하다. 두 돌이 지났을 때, 집 앞 어린이집에 데리고 갔더니 말을 하지 못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보내지 않았다. 엄마는 유아에 관한 책도 많이 보았고 '금쪽같은 ….' 방송을 보거나 전문병원을 다니면서 나름대로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엄마는 '신경세포를 둘러싸는 미엘린(myelin)은 2년이면 다 채워진다는데…. 왜 수초화현상이 늦어지는 것일까?'하고 노심초사하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집에서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고 나름대로는 언제나 바빴고, 놀이터에 가면 혼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손을 잡고 끌고 갔다. 그랬던 아이의 말을 듣는다는 건 엄마로선 '소통'할 수 있어 정말 기쁜 일이었다.
옛날엔 아이가 5세가 되면 서당에 보내 천자문을 배웠다. 천자문에 '영음찰리(聆音察理)'라는 말이 있다. '남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자세히 살펴라.'는 뜻이다. 영조 때 한자교본인 홍성원의 주해천자문에는 '가장 높은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그 일의 이치를 살핀다. 예를 들면, 공자가 제자인 자로(子路)가 타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그 거문고 소리는 북쪽의 변방에서 살육하고 정벌하는 소리로 들린다."라고 한 것과 같다.'로 뜻풀이 되어 있다.
자로는 공문십철 중 정치하는 일에 뛰어난 인물이다. 공자와는 아홉 살의 차이가 났다. 그는 원래는 무뢰한이었다. 그러나 공자의 감화를 받고 가장 가까이에서 스승을 보필한 사람이기도 하다.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과 용맹함에 공자는 '자로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거야.'라고 항상 걱정을 하면서 아꼈다.
자로는 항상 스승 가까이에서 거침없는 대화로 지식을 익혀나갔다. 공자는 그러한 자로에게 앎에 대하여 "자로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의 앎이다."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어느 날 공자는 자로에게 육언(六言)의 미덕 때문에 가려진 여섯 가지의 폐단(六蔽)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때 자로는 공자 옆에서 스승을 모시고 있다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아직 듣지를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육언(六言)과 육폐(六蔽)에 대하여 말해 줄 테니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다.
어짊(仁)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때 어짊의 폐단은 어리석음(愚)이 된다. 슬기로움(知)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방탕(蕩)에 빠져 무절제하고 까불게 된다. 믿음(信)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믿음과 옳음을 해치는 도적(賊)이 된다.
곧음(直)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용서할 줄 모르고 노끈으로 목을 조르는 교(絞)처럼 된다. 용맹(勇)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난폭(亂)해진다. 굳셈(剛)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아니하면, 그 폐단은 노여움을 함부로 이쪽저쪽으로 옮겨 충돌하는 광(狂)이 된다.
육언은 배우지 아니하면 육폐가 될 수도 있다.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 토머스 고든 박사는 '관계'를 세우는 기술은 '대화'이고, 대화기술은 '적극적 듣기'에 있다고 하였다. 보며, 쓰며, 대답하며, 생각하며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잘 말할 수 있다.
이제 삼월이 되면, 둘째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야하는 엄마의 생각이 복잡할 수도 있다. 우리 집 맏며느리의 육아 이야기이다. 선생님은 아이의 말을 '적극적 듣기'로 '관계'를 가졌으면 좋겠다. 하나가 되기보다 '함께'하여 적극적 듣기로 말문을 열게 하면 좋으리라.
눈으로 듣고, 손으로 듣고, 온몸으로 듣고, 입으로 듣는 것은 경청이다. 그것을 깨달으면서 듣는 것은 영음(聆音)이다. 습관은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야 한다. 남의 말을 들으면 이치를 자세히 살펴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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