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새 출발선…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죽음은 새 출발선…자연으로 돌아가리라
  • 황인옥
  • 승인 2021.03.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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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어울아트센터 유망작가 릴레이 Ⅰ ‘곽이랑’展
암 투병 과정 통해 生과 死 사유
나무줄기·백색소금 등 천연재료
죽으면 흙이 되는 육신 상징화
전시 주제 ‘염’ 중의적 의미 담아
곽이랑작-염
곽이랑 작 ‘염’

삶과 죽음은 예술의 단골 주제다. 예술가들은 삶과 죽음 속에서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감각의 날을 예민하게 다듬는다. 하지만 삶은 가깝고 죽음은 멀다. 살 갗을 파고드는 죽음의 공포에 내몰리지 않은 산자들 중 누가 과연 자신의 전부를 걸고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걸지 않은 사유에 얼마 만큼의 진성성을 말할 수 있을까?

작가 곽이랑도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의 문제를 다룬다. 20대 중반부터 10여년을 삶과 죽음, 그 중에서 죽음에 무게 중심을 두고 통찰을 이어왔다. 그러나 그녀 나이 겨우 30대 중반. 아직은 청춘인 그녀가 통찰한 죽음의 깊이가 깊으면 얼마나 깊을까?

이 의문을 불식시키는 것은 그녀의 작품들이다. 약을 밀봉해 놓은 약봉지와 약의 효능에 대해 적어놓은 텍스트로 구성된 작품 ‘live life to the full’이나 병원 커튼이나 라탄 나무줄기로 엮은 무덤을 떠올리게 하는 봉긋하게 둥근 모양을 한 형상 속 현무암 덩어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작품 ‘위로의식’ 등에서 삶 너머에 존재하는 죽음의 향기가 물씬 묻어난다. 도대체 죽음을 두고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이 진정성은 뿌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음일까?

실마리는 10여년 전 그녀에게 닥쳐온 불행에서 찾을 수 있다. 겨우 20대 중반이던 시기에 그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 진단을 받았고, 뒤이어 힘겨운 투병을 시작했다. “유방암 판정과 함께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의 실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사유들이 작업으로 표출되었어요.”

곽이랑 개인전이 북구어울아트센터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북구문화재단 유망작가 릴레이 첫 주자로 초대된 전시다. 전시에는 텍스트가 새겨진 만장처럼 드리워진 커튼과 커튼을 따라 들어간 끝지점에 백색 소금이 담겨진 라탄 나무줄기로 엮은 무덤 같은 조형물을 설치했다. 지난해 연말에 봉산문화회관에서 선보였던 작품 ‘위로 의식’의 변형된 연작이다. 연작은 이번 작업에서 작가가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다.

어울아트센터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의 재료는 천, 라탄 나무줄기, 백색 소금이 전부다. 모두 자연으로부터 온 것들이다. 작가가 지난해부터 자연으로 회귀 가능한 물성들을 찾으면서 발견한 재료들이다. 무덤 속 백색 소금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육신을 상징화한 장치다. 인간 역시 자연처럼 삶이 끝나면 완벽하게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에 대한 상징화다. “인간의 산출물은 자연을 훼손하지만 인간 자체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회귀라는 법칙을 따릅니다. 순환이죠. 자연회귀 재료들에는 그런 의미가 스며 있어요.”

전시 제목이 ‘염’이다. 작가는 ‘염’을 통해 ‘삶’과 ‘죽음’을 아우른다. 전시장에 드리워진 커튼 같은 천 위에는 ‘염’의 사전적 단어들이 새겨져 있다. 소금의 ‘염’, 불교 용어의 영원하다를 의미하는 ‘염’, 장례 때 시신을 단장하고 수의를 갈아입힌 후 염포로 묶는 절차로서의 ‘염’, 몸의 명증 반응에 해당하는 ‘염’ 등 다양하다.

‘염’이 가진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의미는 역시 죽음과 관련된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죽음’을 직시한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한 무덤 형태의 조형물은 ‘죽음’에 대한 메타포다. 무덤이나 죽은 후의 몸으로 대체되는 상징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죽음’과 마주하는 태도는 지난해 암이 재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 세계’까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작가는 “‘순수히 어둠에 발을 들이지 말라. 대신 저물어 가는 빛에 분노하고 다시 분노하라’라는 문구에 마음이 꽂혔다”며 “어둠을 죽음에 대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죽음에 굴복하기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대면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되짚어 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죽음’과 ‘소멸’을 같은 선상에 두지 않는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고정되어 있다’는 에너지보존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에 따라 바람이나 물, 구름 등의 또 다른 형태로 존속하는 이치를 믿으며, 죽음을 나름의 철학으로 재해석한다. 그녀에게 죽음은 또 다른 존재로의 시작점에 해당된다. 이른바 ‘순환론’이다. 무덤의 일부에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 장치는 또 다른 존재로 넘어가는 통로로 활용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출발선에서 이번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백색 소금은 전 작인 백색 약가루로부터 파생됐다. 몸을 구성하거나 죽은 육신이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 역할이라는 소금의 상반된 쓰임에서 삶과 죽음의 공존을 발견했다.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인 것이다. 작가는 죽음을 통해 사실은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죽음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탐구하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것. 이를 통해 비워내고 들어낸 순수한 삶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 간다.

외부에서 작업의 주제를 찾던 이전 상황과 달리 내면 속 의식의 흐름을 직시하고 그것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지금이 작가로서 행복하다고 했다. 비록 암이라는 개인적인 상황이 작업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지만 그녀는 이 상황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국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업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그 너머에 있다. 바로 존재의 보편 개념인 ‘삶’과 ‘죽음’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제가 했던 생각들을 객관화해서 저 자신이 자유로워졌듯이, 관람객들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시는 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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