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깨고 진솔하게” 현대미술, 영화화 시도 대중과 호흡
“형식 깨고 진솔하게” 현대미술, 영화화 시도 대중과 호흡
  • 황인옥
  • 승인 2021.03.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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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은 누구죠?’ 남기웅 감독 인터뷰
44人 예술 옴니버스 형태로
작가 1인당 1~3분 가량 할당
직접 시나리오 쓰고 연기 참여
매체 통해 작가 자신을 작품화
다시-남기웅 감독
남기웅 감독은 현미협 소속 작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당신은 누구죠?’을 만드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며 이번 영화가 그의 인생의 소중한 서건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 19가 앞당긴 뉴노멀 시대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뉴노멀 시대는 기존의 표준화된 시스템에 최적화되기보다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것에 환호한다. 뉴노멀 이야말로 평범을 거부하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보편화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남기웅이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이하 현미협) 소속 44인의 작가를 주인공으로 촬영한 영화 ‘당신은 누구죠?(Who R U?)’는 뉴노멀 시대의 화두에 부응했다. 구조나 형식에서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내놓았다.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는 이번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남 감독 역시 이번 영화의 의미를 ‘형식 파괴’에 두고 있었다. 남 감독은 “미술 작가 44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제작자와 배우가 되어 1~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표현하는 형식은 지금까지 볼 없었던 장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 비전문인인 작가라는 특정 집단이 각자 시나리오를 쓰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좀 다르죠.”

지난달 22일 오후 2시에 현대백화점CGV에서 영화 ‘당신은 누구죠?’ 시사회가 열렸다. 작가 44인이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영화라는 낯선 장르로 보여주며 관객과 만났다. 이날 영화는 107분간 상영됐다. 작가 1인당 1분에서 3분 가량의 분량이 할애됐다.

이 영화는 현미협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누구든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영어 버전도 준비하고 있어 세계인 모두 공유가 가능하다.

대구 미술계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영화의 실체가 시사회를 통해 드러나자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미술계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이야기를 작가 스스로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함으로써 현대미술의 이해도를 높였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반면에 영화쪽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다큐멘터리, 드라마, 코미디 등 다양한 형식을 버무려 기존의 주제나 형식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영화의 핵심 키워드인 ‘파격’이라는 가치는 현대미술의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질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이번 영화와 영화의 주제인 현대미술, 그리고 현대미술 작가라는 삼 박자는 정확히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현대미술 작가라는 특정 집단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는데 있다. 지금까지 미술가를 다뤘던 영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의 시선에 국한됐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접근법부터 달랐다. 오직 작가의, 작가에 의한, 작가를 위한 영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 하나의 파격은 작가들이 주체적으로 영화에 참여한 점이다. 44인의 작가들은 제작자와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배우로 직접 참여했다. 그들이 스스로 제작비를 감당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연기를 감행했다. “일찍이 이러한 방식을 접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번 영화는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방식을 재설정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로 다가온다. 전시장에 걸린 미술작품으로 소통했던 기존의 소통방식에서 탈피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작품이 아닌 작가를 들여다보았다는 것. 이 경우 얻게 되는 가장 강렬한 가치는 ‘진정성’이다. 남 감독은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것만큼 진정성 있는 소통은 없다는 것을 이번에 절실하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난해
일반인들 공감할 수 있어야
파격 지향 기존에 없던 장르”
영화인들, 새 시도 박수 보내

사실 돌이켜보면 현대미술작가, 그것도 대구 지역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누구인지’를 궁금해하는 일반 관람객은 드물다. 그들에 대한 관심은 미술인들이나 미술 애호가 정도에 국한된다. 현대미술에 덧씌워진 ‘난해하다’는 인식이 일반인들과 미술과의 거리를 멀게 한 탓이다. 영화 ‘당신은 누구죠?’는 현대미술과 일반 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히자는데 기획의도를 두고 시작됐다. “작가들에게 ‘당신은 누구죠?’라고 묻는 목적은 결국 당신의 작품은 무엇이냐를 묻는 것과 일맥상통해요.”

뉴노멀 시대에는 장르간의 협업이 대세지만 영화와 현대미술과의 융합은 낯설다. 이 조합은 남 감독이 현미협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밑그림이 그려졌다. 정확히 남 감독이 2019년 현미협 작가전인 ‘드로잉’전에 참여하고, 현대미술을 좀 더 내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융합의 단초가 마련됐다.

그가 “전시장에 비치된 작가의 경력이라는 단편적인 정보와 벽에 걸린 작업의 결과물인 작품만으로는 도대체 작가들이 그림과 그림을 보는 관람자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며 당시의 당혹감을 떠올렸다. 그는 “그래도 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고 드로잉 정도는 긁적거리는 저 조차도 그런데 ‘일반인은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이번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때 어쩌면 벽에 걸린 작품보다 이런 작품을 만든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현대미술을 주제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막연한 계획은 그가 현미협 소속 작가가 되면서 본격화됐다. 그는 영화감독이지만 미술에도 조애가 깊어 현미협에 가입했다. 현미협 소속 작가로 활동하면서 영화감독으로서 현미협에 기여할 방법을 찾게 됐다. 마침 촬영하던 영화 ‘농장’이 마무리 되고 편집 작업에 들어가 여유가 생겼고, 코로나 19로 작가들의 활동이 위축되는 시점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연말에 영화 제작이 성사될 수 있었다.

출연 작가들이 감당하는 것으로 가장 큰 난관인 제작비가 해결되면서 영화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최소의 제작비만 허용되었으므로 남 감독과 촬영감독만 전문영화인으로 참여하고, 조감독과 연출부는 현미협 소속 작가 김아영과 김민정이 품을 보태기로 했다.

영화 제작을 위한 외적 얼개는 얼추 꾸려졌지만 문제는 내용이었다. 어떤 장르와 형식, 스토리로 영화를 진행할 것인가는 오롯이 감독인 자신의 과제로 다가왔다. 특히 내용적인 측면은 작가들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영화형식으로 끌어내는 것은 남 감독의 역할이었다.

영화 제작은 촬영 전 사전인터뷰와 본 촬영으로 스케줄이 짜여졌다. 촬영 기간이 17일었던 것에 비해 인터뷰 기간이 20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남 감독이 사전 작업에 들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남 감독은 44인 작가들의 작업과 삶을 파헤치기 위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던졌다.

“참여 작가들에게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주제는 무엇이고, 방법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일일이 설명하고 그 이해의 토대 위에서 실마리를 풀어가고자 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개별 작가들에 대한 스토리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막상 촬영 날 붓이 아닌 카메라와 마주한 작가들이 머뭇거렸다. 영화 만듦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 감독은 “어색함도 잠시 작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카메라에 적응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영화제작에 참여한 스텝들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제작 초기에는 대구에서 미술 작가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겠다는 시도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늘 봐오던 작품소개와 인터뷰 아니겠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촬영을 끝내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선입견은 깨졌다. 이번 영화의 후반 작업을 맡은 스텝들은 “막상 영상을 보니 재미있다”며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들은 유명인사가 아닌 일반 작가들을 통해 현대미술을 진솔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이번 영화는 기존의 영화 궤적에서 보면 궤도 이탈이다.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에 생소한 것들이 적지 않다. 남 감독은 굳이 말하자면 “당신은 누구죠?” 장르로 봐 달라며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 “시작은 대구현미협 작가들로 했지만 음악인, 현대무용가, 평범한 학생들, 시장 상인 등 어떤 집단이든 대입이 가능하다”며 확장성을 언급했다. “당신은 누구죠?”라는 장르가 다양한 집단들과 영상인들에 의해 시도 되기를 바라는 의미의 확장성이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남 감독이 얻은 것은 ‘자유’다. 그는 “영화는 제작과 배급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번 영화는 제작과 배급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며 “영화의 재미는 제작과 배급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기승전결 클라이막스 반전만 생각하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작가님들을 진솔하게 담기 위해 감독의 판단과 선택을 최소화했어요. 색다른 방식이었지만 이번 영화를 하면서 모든 것이 좋았고,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다시 또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정말 진솔하게 인간을 담아보고자 한 작업이었고, 제 영화 인생의 소중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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