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언제나 그 시작은 작다
<대구논단> 언제나 그 시작은 작다
  • 승인 2009.02.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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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큰 제방도 작은 쥐구멍으로 인해 무너지듯이 무릇 모든 일의 단초(端初)는 지극히 작은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서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인간 사고의 원형이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신화 속에는 여러 가지 단초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트로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널리 감상되고 있는 트로이 전쟁도 그 단초는 작은 사과 하나에 있었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의 아들로 헤카베는 파리스가 태어날 때 온 도시가 불타는 꿈을 꾸었다. 예언자는 그것이 트로이의 멸망을 의미하는 불길한 전조이므로 아기가 태어나면 죽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차마 자식을 죽일 수 없었던 프리아모스왕은 파리스가 태어나자 양치기에게 아기를 이데(Ide) 산에 버리도록 했다. 양치기가 아기를 버린 후 5일 만에 다시 가보니 놀랍게도 아기는 곰의 젖을 먹으며 살아있었고, 아기를 불쌍히 여긴 양치기는 자신이 직접 키우기로 하였다.

양치기 소년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던 파리스의 운명은 실로 우연하게 바뀌게 된다. 그 무렵 이웃 왕국의 펠리우스 왕은 바다의 요정 테티스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면서 모든 신들을 초대하였다. 그런데 깜박하여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를 빠뜨리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에리스는 축하연 좌중에 황금사과를 하나 던졌는데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씌어져 있었다. 이 사과를 두고 세 명의 여신 즉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각각 자신이 그 주인이라고 다투게 되었다.

세 여신은 조금도 양보 없이 싸우게 되었고, 다른 신들에게 판결을 부탁했지만 다른 신들은 싸움에 휘말리기 싫어서 판결을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아옹다옹하던 세 여신이 올림포스 산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다가, 산기슭에서 목동 노릇을 하는 훤칠한 청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청년이 바로 사과를 사이에 두고 올림포스 신들 사이에서 말싸움이 시작될 당시에 태어난 파리스였다.

세 여신은 한눈에 그 청년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세 여신은 문득 그 청년이 자기네 세 여신의 정체도 모를 것이고 그렇다면 누가 사과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세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던져주고는 누가 이 사과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 판결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각각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먼저 눈부신 갑옷을 차려입은 아테나 여신이 자기에게 사과를 던져주면 어떤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는 무적의 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으로는 헤라 여신이 자기에게 그 사과를 던져 주면 소아시아 전체의 통치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눈이 파란 아프로디테가 금실 타래 머리를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에게 사과를 던져 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게 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택했고 여신의 약속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트로이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헬레네는 이미 이웃나라의 왕비였던 것이다.

물론 트로이 전쟁은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싸움이 단초가 되었지만 밑바탕에는 영토 확장, 패권 확보 등의 여러 목적이 깔려있었다. 이처럼 작은 단초가 새로운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흘러가듯 파리스는 전쟁 중에 그리스의 최고 영웅인 아킬레우스를 죽이지만, 얼마 후 자신도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인간사에서는 작은 시작이 큰 업적을 남기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 시작의 주인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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