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걸 그룹과 아동 성범죄
<대구논단> 걸 그룹과 아동 성범죄
  • 승인 2010.07.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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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대구대 사회교육과 교수

“최근 아동 관련 성범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9시 뉴스를 시작하는 어느 앵커의 말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죄여오는 불안감에 부모들은 학교로 학원으로 딸들을 데려가고 데려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아우성에 잠이 깬 정부는 허둥대며 몇 가지 대책을 들고 나와 뒷북을 친다. 사법부는 양형을 강화했고, 입법부는 화학적 거세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행정부(경찰)는 아동 성범죄에 전쟁을 선포하고 전담 수사대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국민, 매스컴, 정부, 학교 모두가 난리다. 하지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초지종을 들여다보면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앵커맨이 말하는 `최근’ 현상은 뉴스가 아니라 오래된 추세다.

아동 성범죄는 해마다 통계적으로 증가해 왔는데, 경찰청은 2007년에 벌써 1,081건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하루 평균 3건에 달한다. 즉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아동 성범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벌써부터 우리 현실이었다. 다만 이러한 범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언론과 정부가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사건 등을 겪으면서 태도를 바꾼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사실은 통계 수치라는 `빙산의 일각’ 밑에 잠겨있는 소름끼치는 현실이다. 다른 범죄와는 달리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은 신고를 꺼린다. 그래서 경찰에 접수되는 것은 10%를 밑돈다고 한다.

더욱이 여아의 경우, 본인의 신고가 어렵고 또 부모가 사실을 알게 되어도 먼 앞날을 생각하여 감추는 일이 더 많을 것이고 보면, 통계 숫자가 현실의 얼마를 드러내고 있는지 막막하다. 신고율을 10%만 잡아도 하루에 30건의 아동성폭력이 실재로 발생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채 ...

물론 경악스런 실상을 들춰내는 것만으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왜 이토록 아동 성범죄가 사회에 만연해 있는가?’다. 이 물음에 직면하여 갑자기 `걸 그룹’이 뇌리를 스친 것에 나 자신도 사실 의아했다.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이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는 인기 연예인의 절정기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연예인들은 흔히 `아이돌’이라 불린다. 원래는 유사 종교적 숭배의 대상인 `우상’을 의미했지만, 우리의 대중문화에서는 `성인돌’ 또는 `어른돌’의 대립개념으로 사용된다. 즉 아이돌은 실제로 아이들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아이돌의 인기에 `섹시’함이 필수적인 요소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가 대중매체를 이끌었던 시절엔 가창력이 인기몰이를 담당했다. 카세트테이프나 CD를 통해 노래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TV가 문화의 대세를 이끌어 가면서 가수의 외모나 춤이 중요하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뮤직 비디오와 MP4가 등장하면서 이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즉 음악을 립싱크로 처리하고 몸으로 노래하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아이돌의 몸과 몸짓을 클로즈업한 화면이 시청자의 눈길을 잡기 위해선 충동적인 요소가 효과적이다. 타고난 본능들 가운데 인간이 가장 충동적이 되는 것은 성적 본능이다. 걸 그룹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라. 노출을 위한 의상과 엉덩이를 기이하게 움직이고 몸을 꼬는 모습은 단순한 매력을 넘어 선정적이다.

대중매체에서 이런 장면들이 넘쳐흐를 때, 십대들의 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형성된다. `아이돌’의 섹시미에 열린 눈은 `아이들’을 성적 존재로 응시(gaze)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제력이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괴물로 불쑥 나타하게 된다.

여성부가 내놓은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동성폭력은 90%나 증가했다고 한다. 걸 그룹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시기와 얼추 겹치는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 쉽게 간과하기 어렵다.

`아동기(childhood)’라는 오늘날의 개념은 근대에 깊숙이 들어와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루소로 대표되는 낭만주의가 동심의 순수성을 찬양했고, 1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아동노동금지를 비롯한 각종 보호가 제도화되었다. 그리고 19세기를 지나면서 그들을 위한 교육이 국가의 의무로 정착되었다. 이때 동심은 무성(non-sexual)으로 간주되었고 어른의 성적 세계와 격리되었다.

아이들이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져 가는 오늘날의 현실은 탈 근대적 문명전환의 한 단면인지 모른다. 그리고 아동성폭력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되는 징후의 깊은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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