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경기 연천서 발견된 주먹도끼, 세계 학계 발칵 뒤집다
1987년 경기 연천서 발견된 주먹도끼, 세계 학계 발칵 뒤집다
  • 김종현
  • 승인 2021.03.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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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8)고고학과 유전자를 더듬어 선인들의 먹거리를
고고학 전공한 주한미군 병사
한탄강변 걷다 수상한 돌 발견
조사 후 학회에 논문 제출 결과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확인
“아시아엔 구석기 주먹도끼 없다”
정설로 통하던 모비우스 가설
한 미군병사로 인해 무너져
주먹도끼와세석기
한반도에도 일찌기 주먹도끼와 세석기가 사용됐다. 그림 이대영

많은 곤충들이 더듬이(촉각)로 시각을 대신해 사물을 파악하듯이 현존하지 않은 과거의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과학적 더듬이(scientific antenna)로 고고학(archaeology), 유전학(genetics) 및 신화(myth) 등을 통해 한반도에 살았던 선인들의 먹거리(eating)를 더듬어보고자 한다. AD 100~800년경 페루 남부해안 지역 나스카 문화(Nasca culture)의 하나인 지상거대화(geoglyphs) 200여 점 작품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작은 종이쪽지그림을 소실점으로 해 원근법 상의 연장선을 그어 거대화를 그렸다. 이런 선인들의 지혜를 살려 현존하는 먹거리를 기반으로 하고, 과학적 더듬이로 연장선을 거꾸로 이어 선조의 먹거리를 그려보고자 한다. 법률용어로 표현하면, 과학적인 연장선 위 실체적 진실(real fact in the scientific extension)을 찾아본다.

이렇게 과학적 더듬이로 사용하는 고고학(archaeology)이란 인류역사의 쓰레기통을 거꾸로 뒤집어 현존하는 사실에 연장선을 긋는 학문이고, 유전학은 현존하는 인체의 실마리를 당겨 과거 혹은 미래(질병예측 등) 연결성을 짐작하는 학문이다. 과거는 햇볕에 말리면 역사가 되지만 달빛에 바래진다면 신화가 되었기에 역사에 없는 건 신화에서 찾을 수도 있다. 어떤 먹거리든 인체에 들어가면 물질적 특성은 유전자로 전승될 것이고, 에너지로 승화된 정신문화는 신화라는 발자국을 남긴다. 또한 과거 먹거리의 쓰레기 혹은 분뇨 등이 어딘가 버려진 인류역사의 쓰레기통에 남았기 때문이다. 고고학, 유전학 및 신화로 3차원 위상기하학현미경을 만들어서 온고지신의 조견도(bird’s-eye view)를 따라 미래먹거리를 찾아본다.

◇한반도 정착까지 대장정(大長征)

인류는 BC 600만년 이전 침팬지의 조상과 분리되었다는 진화론을 우리는 익혀왔다. 1924년 호주 인류학자 레이몬드 다트는 남아프리카 타웅에서 원숭이에서 진화된 최초 화석인류를 발견했다. 420만년 이전 플라이오세에서 플라이스토세 초기(Late Pliocene and Early Pleistocene)에 살았던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다. 이어 230만년부터 165만년 이전 홍적세에 살았던 조상이 손재주가 있는 사람(handy man)이란 의미를 띤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다. 이들은 1964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올두바이협곡에서 발견된 화석인류다.

그리고 200만년 이전 이베리언 반도에서 자바까지 걸쳐 살았던 직립보행(upright man)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진화하면서 먹거리를 찾아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먹은 음식을 통해서 유전자가 형성되는데 언어소통(말)을 할 수 있는 POX2유전자(POX2 Organism, Acyl-coenzyme A oxidase 2)도 더듬어보자. 언어소통은 18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출현한 뒤였다. 그들은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의 사막화를 인지하고 먹거리를 찾아 지구촌 이동을 시작했고, 3만 년 전까지 지구촌 전체에 분산 거주했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도 3만년 이전에 선인들이 살았다고 짐작된다.

인류학에서는 화석인류의 두개골 화석과 현생인류의 외모를 비교해서 조상을 달리한다는 확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1980년대 영국 고인류학자(paleo-anthropology) 그리스토퍼 스트링거와 미국 앨런 윌슨이 두개골화석과 분자유전학의 분자시계(molecular clock)를 분석한 결론은 i) 현대인류가 15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바나지역에서 돌연변이가 발생, ii) 이들 후손들이 세계각지로 이주해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노아의 방주이론(Out of Africa theory)’을 내놓았다. 이 학설에 따르면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크로마뇽인)에 의해 대체 사라진 것이란 사실이 윌슨(A. C. Wilson)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론과 부합되어 정설로 대두되었다.

우리 조상님들도 '효자는 효자를 낳고(孝子出孝子), 불효자는 불효자를 낳는다. 믿지 못한다면 처마물이 떨어짐을 봐라, 한 방울도 여차가 없다.' 라고 가르쳤으며, '삼밭에 다북쑥은 붙들어 매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蓬生麻中,不扶自直).'고 믿었다. 마치 기계의 설계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攝理)로 인식했다. 이를 두고 부전자전 혹은 모전여전이라고 했다.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이어받는 것이고, 먹는 음식이나 환경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문화적 유전자(meme)라는 뭔가로 알았다.

오늘날 과학에서는 유전자 DNA 혹은 RNA는 5가지 핵산인 i) 사이토신(cytosine, C4H5N3O), ii) 유라실(Uracil, C4H4N2O), iii) 구아닌(Guanine, C5H5N5O), iv) 아데닌(Adenine, C5H5N5), v) 티민(Thymine, C5H4N2O2)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당(sugar)과 인산(phosphate)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서 후성유전학(epi-genetics)을 제창한 모셰 스지프(Moshe Szyf, 1955년생)는 음식을 통한 경험과 환경을 영상필름처럼 기록해 3대까지 전달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홍규는 당뇨병 유전자 비교연구에서 한국인의 70% 가량은 강한 북방계 유전자, 30%는 약한 남방계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단국대학교 김욱은 Y염색채의 유전적 특이성을 연구해 동남아인의 유전자는 20~30% 가량이며, 8~9천년 전 동남아인의 한반도 유입과 3~4천년 이전 농경문화의 유입이 일치함을 알아냈다. 여기서 Y염색체는 부계유전(Adam’s gene), 미토콘드리아는 모계유전(Eve’s gene)이기에 한민족의 기원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주먹도끼를 들고 한반도에 이주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지역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의 물이 우간다에 모여 나일강 원류를 형성하고 동북부 아프리카로 흘러서 최초로 지구촌에 출현한 인류가 비교적 평온하고 풍요롭게 수렵과 채취를 하면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하라지역은 모래로 뒤덮여서 사막화가 확대되었고, 인류는 보다 평화로운 희망의 땅을 찾아 10만년 이전에 아프리카를 떠났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인류최초 풍요의 근원을 앗아간 재앙(The Plague of Blood)이다. 비교적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평원으로 옮겼으며, 그곳마저 사막화가 진행되어 있었고, 258만 년 전부터 계속되었던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지질시대의 홍적세(洪績世) 빙하기(Ice Age)에 접어들었다. 다시 알타이 평원(Altai plateau)의 오로젠시스 벨트(Orogenesis belt) 즉 이스트 사야산맥(Altai East Sayan Mts)과 바이칼 호수로 이동을 계속했다. 이때는 BC 1만 2천년에서 BC 8천년경으로 세석기(細石器, microlith)를 사용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2만년 전후 혹한기를 피해 가족들과 다시 한반도(Korea Peninsula) 로 이동했다.

한반도에 세석기(microlith) 혹은 잔석기가 발굴된 건, 1991년 홍천군 북명면 하화계리에서 흑요석, 수정, 판암, 석영 등으로 출토된 때다. 뿐만 아니라 함경북도 나선시 굴포리 서포항,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 충북 단양군 도담리,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新坪里), 경남 거창군 남상면 임불리(南上面 任佛里), 제주시 한경면 고사리 등에서도 세석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고학적 주요유물은 세석기 이전이다. 1978년 1월 20일 주한미군 제2 보병사단 상병이었던 그레그 보웬은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며, 학비보조를 받고자 주한미군에 근무했던 참이었다. 그날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서 여자친구와 걷고 있는데 포장하고 있는 도로 옆으로 도자기 파편과 숯덩이가 삐죽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늘 머릿속에 아슐리안형 주먹도끼(Acheulean Hand-axe)가 각인되어 있었는데 호기심이 발동되어 주변을 살폈다. 한참동안 주변조사를 마치고,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끓이려고 돌을 찾아 갔다가, 이상한 돌 하나에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을 샅샅이 뒤져 3개의 손도끼(hand-axe)와 1개의 땅 긁개(scraper)를 주웠다. 이를 서울대학교 고고학자 김원룡을 통해 고고학회에 논문을 제출하였으며, 애리조나대학에서 고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Acheulean Hand-axe)와 동시대인 구석기시대 가운데 전기구석기시대(Lower Paleolithic Period)의 주먹도끼로 인정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는 250만 년 전부터 마지막 간빙기(間氷期)가 시작되는 1만년까지로 보고 있다. 고고학에서는 세분하여 25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전까지를 전기구석기시대(Lower Paleolithic Period), 10만년에서 4만년까지를 중기구석기시대(Middle Paleolithic Period), 그리고 4만 년 전에서 1만년까지를 후기구석기시대(Late Paleolithic Period)로 나눈다. 1948년 하버드대학교 고고학자 모비우스(Hallan L. Movius, 1907~1987)는 아슐레안형 손도끼를 i) 아프리카 직립원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봐서 150만 년 전으로 소급, ii) 유럽이나 아프리카에만 있고, 동아시아는 없다는 ‘모비우스가설(Movius Line)’로 내놓았고, 그 가설은 30년간 정설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전곡리의 주먹도끼 출토에 따른 돌멩이 토층분석 결과 27만 년 전으로 판정됨으로써 모비우스 라인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게 한반도에 살았던 선인들은 주먹도끼(hand-axe)부터 세석기(microlith)를 사용했으므로 수렵과 채취라는 활동을 통해서 자연적으로 생육된 거친 먹거리를 마련했다. 나무나 풀의 열매를 채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먹도끼로 동물을 사냥했다. 나아가 세석기를 사용했을 때는 동물사체를 해체해서 불에 구워먹었다. 또한 땅 긁개(scraper)를 사용해 땅속의 식물뿌리를 채취했기에 마(麻), 감자, 무 등의 식재료들을 사용했다. 아직까지는 거주민이 적어서 가족단위로 야생동물 사육이나 농작물 경작은 하지 않아도 평온하게 살 수 있었다. 1983년에 발견된 충북도 청주군 가덕면 노현리 시남부락의 두루봉 김흥수(金興洙)의 석회석 채굴 동굴에서 발견된 4만년 전에 생존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장 110~120cm 정도 5~6세의 ‘흥수아이’가 국화꽃에 덮인 온전한 상태의 화석으로 발견되었다. 외모 상 현대인 우리와 같은 호모사피언스((Modern Homo Sapiens)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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