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귀신도 대화를 원한다
<대구논단> 귀신도 대화를 원한다
  • 승인 2010.07.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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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일전 영남대학교 이강옥 교수로부터 귀신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어릴 적 들었던 귀신 이야기 한 자루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그 무렵 필자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여 공책에 적어가며 이야기를 모았는데 귀신 이야기도 여남 자루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번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 이야기는 실제 귀신 모습을 보고 싶어 한 어느 총각 이야기였다.

실제 귀신 모습을 보려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밤 자정 무렵 시골 헌 기와집 마당 구석에 있는 변소로 가서 촛불을 켜고 거울로 자신의 어깨 뒤를 살펴보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용기와 배포로는 쉽게 실행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그 총각이 실제로 실행에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촛불을 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니 그 총각이나 필자가 실제 귀신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많은 귀신을 보아왔다. 흔들리는 촛불 속에서 거울에 비치는 흔들리는 모습은 귀신의 모습이 아니고 바로 자신의 모습일 것이니,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 귀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귀신이 무서운 것은 어디가 코이고 어디가 입인지 구분하기 힘든데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사리 분별이 분명하지 않으면 누구나 귀신이 되는 것이다. 흔히들 `물귀신 같다’는 말이 있는데 사리 분별이 분명하지 않아서 자꾸만 잘못된 수렁으로 끌고 갈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 우리 자신이 바로 귀신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귀신이 된다. 귀신은 갈 곳이 분명히 정해지지 않은 떠도는 혼령들을 말한다. 분명한 태도로 자신의 일을 소신 있게 처리하고 남과 더불어 잘 살아가면 귀신을 면할 수 있다.

이강옥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소통만 잘 되면 귀신 문제도 해결된다고 한다. 그는 밀양 아랑각의 아랑 전설을 예로 들었다. 즉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나타나면 채 이야기도 듣기 전에 대개는 지레 겁을 먹고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다.

또한 귀신은 이유 없이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무언가 맺힌 한이 있어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 원인을 제대로 찾지 않고 섣부른 판단으로 일의 전말을 함부로 재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귀신이 나타나는 정확한 원인을 먼저 찾아야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다.

민속학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혼령은 쉬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귀(鬼)가 되어 중간계를 떠돌게 되는데 굿을 하고 푸닥거리를 하는 것은 이들을 위로하여 하늘나라로 보내기 위한 의식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굿의 근본이 대화를 통한 한풀이이듯이…
….
아랑의 원한을 풀기 위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었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내 앞에 나타난 이유를 말하여라.” 아랑의 원혼은 이 한마디로부터 달래어졌다. 그전에는 이 한 마디 말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랑의 원혼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고, 그 원한이 풀리게 되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처럼 귀신의 원한도 들어줄 수 있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의 한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누구나 가슴을 열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줄 때에 귀신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소신(所信)이라면 또 몰라도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 자기 고집만 뿌득뿌득 내세우는 것은 바로 자신이 스스로 귀신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이 바로 귀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라고 고집부리고 있는 것이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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