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박인주 사회통합수석의 역할
<대구논단>박인주 사회통합수석의 역할
  • 승인 2010.07.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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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대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나름대로의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게 된다.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갇히게 되고 평생 동안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특별한 유대의식이 없겠지만 나중에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그 사람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흔히 “나는 아무개하고 유치원부터 함께 다닌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물며 이성을 가지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시기인 중고등학교는 말할 나위도 없다.

꾀복쟁이 친구, 불알친구라는 말은 어려서부터 지극히 친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죽마지우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역사관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이념과 사상이 다른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같은 학교를 다녔어도 서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익지 않은 사이가 있다. 언젠가 보수우파의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조갑제와 좌파의 이론가라고 하는 강정구가 부산고 동기 동창이면서도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해서 신문 한 구석의 가십이 된 일도 있다.

따라서 오랜 세월 살아가는 동안 옛날의 우정을 지속할 수는 있어도 이념이나 사상을 공유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생활의 방편도 다르고 생각하는 범위도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삶을 유지하다보면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이 달라지기도 하고 이념적으로 판이한 입장 차이가 노정될 수 있는 것이다. 6.25사변이 터졌을 때 우리는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몸소 겪은 바 있다. 그 전에 광복과 동시에 시작한 좌우 극한대립은 민족의 분열을 가져 왔고 부모와 형제 사이에도 이념적 갈등에 몸부림친 바 있다.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분열과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아 올랐다. 생과 사는 이를 부추겼으며 오직 살아남은 자의 승리로만 기록되었다. 남북 어느 쪽도 승자가 되지 못했던 6.25는 남북 양쪽에서 서로 남침과 북침을 주장하며 오직 프로파간다에 치중했지만 구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스탈린의 지시로 김일성이 저지른 남침이라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좌파세력은 기회만 있으면 북침을 노래 부른다. 이들의 행태를 살피면 오로지 북한 감싸기 뿐이다.

문서와 증거가 확실한데도 이를 믿지 않는 것이 그들의 장삿속이다.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중심을 잃지 않고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올바른 판단이 나오게 된다. 이를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이 `최고 최선’이라는 결론을 변하지 않겠다고 하면 무슨 대화가 될 것이며 무슨 토론이 성립되겠는가. 그러나 정부는 언제나 양측의 견해를 모두 수용하고 이를 반추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수용이란 받아드리는 게 아니며 판단의 기준을 정할 수 있는 한 단계일 뿐이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 이뤄진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사회통합수석이다. 이를 맡은 사람이 평생교육원장 박인주다. 그는 원래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흥사단 운동에 몸바쳐온 사람이다. 흥사단은 일제하에서 옥사한 도산 안창호선생이 선각자로서 민족교육에 관심을 갖고 창립했던 역사와 전통의 단체다. 흥사단 출신들은 이 나라의 지도자로 많은 이들이 거쳐 간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민족의 내일을 밝게 하기 위한 무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박인주는 흥사단의 이사장까지 역임했다. 신설되는 사회통합수석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자 보수우파진영에서 갑자기 `좌파’라고 매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심지어 대문짝만하게 신문광고도 나왔다. 대부분의 우파지도자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사실상 손을 떼고 있어 극히 일부의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박인주에게 침이 튀긴 것만은 틀림없다. 함께 시민운동을 해오며 보아온 박인주의 색깔과는 전연 다른 양상이어서 어리둥절하지만 오해의 소지를 제공한 것은 이른바 `6.15공동선언’과 관련하여 맡았던 직책 때문으로 풀이된다.

처음에는 촛불 집회 참여자라는 말까지 나왔다가 그 당시 평생교육원장으로 근무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흥사단 이사장 시절에 직책상 맡았던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6.15선언은 남북정상 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이지 국회인준을 받은 국가 간의 조약은 아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하지 않고 천안함을 공격하는 등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잘못을 사과한다면 이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와 관련된 박인주의 경력 한 조각은 그의 전체 삶의 극히 미약한 부분이다. 그가 지금부터 할 일은 태산같이 크고 많다. 그까짓 미미한 부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 국가를 위해서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갈등을 치유해야만 한다. 보수우파의 분열도 심각한 수준이다. 진보좌파도 갈라져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이들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하고 종합하여 갈등을 최소화하는데 전력을 기우려야 한다. 소통의 중요성이다. 박인주는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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