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여름에 그린 겨울 풍경 세한도(歲寒圖)
<대구논단>여름에 그린 겨울 풍경 세한도(歲寒圖)
  • 승인 2010.07.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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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무더운 여름, 한 폭의 그림을 보면서 잠시 무더위를 잊는다. 그 그림은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세한도이다. 추사는 한국 금석학의 시조이며, 추사체와 난초를 잘 그리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세한도(박철상, 세한도, 문학동네, 2010)의 풍경을 묘사하기를, “조그만 창문 하나 있는 초라한 집 한 채와 오래된 나무 네 그루, 사람이 없는 집, 겨울날 눈 내린 후 먹구름 낀 하늘아래 차가운 바람이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이라 하였는데, 생각만 해도 추운 풍경이다. 그러나 실제 이 그림은 겨울이 아닌 7~8월경에 그린 것이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낸 한 폭의 그림이다. 세한도 오른쪽 위에 화제(畵題)를 보면 “추운 그림일세, 우선(이상적) 이것을 보게. 완당(김정희).”이라 적혀 있다. 추사가 제자인 우선에게 세한도라는 보낸 준 것은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귀중한 책들을 자신의 유배지까지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그림에는 모두 4그루 소나무와 잣나무가 있는데, 이것은 변하지 않는 이상적인 의리를 표현한 것이다. 늙은 소나무 옆에 곧은 젊은 소나무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림을 설명한 부분에서 공자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며 늘 한결같은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나무를 보면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 몸통은 썩고 가지 끝에 솔잎만 몇 개 남은 몰골은 추사 자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옆의 집은 둥근 문이 하나만 달랑 있다. 사람이 없는 집은 쓸쓸함을 더한다. 눈 내린 후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는 유배객인 자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밝은 빛이라고는 정희(正喜), 완당(阮堂), 추사(秋史), 장무상망(長毋相忘)의 4방의 인장만이 다.

추사는 선조 김한신이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지만 자식이 없자 그 제사를 김이주-김노영-김정희로 이어지면서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순조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하던 시절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세자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효명세자가 갑자기 죽자 안동 김씨들은 효명세자의 측근을 제거했다. 결국 추사도 1840년(헌종 6) 효명세자 무고사건(윤상도의 옥)에 연루되면서 제주도 대정현(현 서귀포)에 위리안치된 것이다.

추사는 평소 책을 좋아했고, 청나라 옹방강(翁方綱) 등의 학자들과 교류가 깊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추사가 원하는 책과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그 중에 이상적도 포함된다. 그러나 추사는 평소에는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몰랐다. 명문가 사람에게 이러한 선물의 제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통역관으로 중국에 자주 사신을 수행했다. 그런데 추사가 유배간 사이 이상적은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만학집(晩學集) 등 서적을 구해 추사에게 보냈다. 귀한 책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았을 것인데도 이상적은 권세와 이권에 상관없이 스승 추사에게 보낸 것이다. 결국 추사가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보낸 것은 유배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책을 보내 준 호의에 대한 감사와 보답이라 하겠다. 특히 이 그림을 보낸 것은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이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가게 되자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심지어는 소식을 끊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적만이 추사에게 권세와 이권에서 상관없이 귀중한 책과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즉 논어의 구절처럼 이상적의 추사에 대한 마음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그림을 받은 제자 이상적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상적이 보낸 답장에는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라고 하여, 스승의 쓸쓸함과 고뇌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어 눈물로 읽어내는 제자의 막연함을 표현했다.

`세한도’ 오른편 아래 인장 중 하나는 `장무상망(長毋相忘)’ 이다. 이 말의 유래는 2천 년 전 중국 한대의 막새기와에 찍혀있던 명문으로 그 뜻은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기를!’이다. 우선이 중국 고사를 들어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표현한 것이다. 더운 여름 세한도를 보면서 잠시 더위를 잊어보는 것은 어떨지, 아님 두 사람의 인연을 생각해 보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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