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현창곡목사의 얼굴론
<대구논단> 현창곡목사의 얼굴론
  • 승인 2009.02.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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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현창곡 목사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목회활동을 하다가 영구 귀국했다. 유쾌한 성격 탓에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친밀한 교유를 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졌다. 개신교의 목사라고 하면 어느 누구든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별로 상종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창곡은 다르다.

하루는 그가 사무실에 찾아왔기에 쓴 커피 한잔 나누며 지하철에서 만났던 어떤 전도사의 얘기를 해줬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출근시간대에 가냘프게 생긴 젊은 여전도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힘주어 외치는 `예수천국’의 얘기는 많은 사람들의 역정을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되었음을 느낀 대로 말했다. 늠름하기까지 했던 여전도사는 만원 지하철 승객들의 빗발 같은 항의에도 까딱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현목사는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런 식의 전도를 사명감으로 가진 분들이 없지 않다”고 시인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미국에서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그는 개신교 목사이면서도 이슬람이나 불교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를 한 덕분에 타 종교행사에도 자주 갈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유대교 측의 초청을 받아 그들의 회당에 가서 설교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확대하여 지금도 미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이스라엘의 뿌리는 유대교다. 유대교를 기독교의 아류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종교적으로는 전연 판이하다. 이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하게 된 현창곡은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며칠을 고민했다. 거기에서 그는 `얼굴’을 주제로 선택했다. 얼굴이란 만이면 만 사람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는 얼굴 두 글자를 하나의 단어로 읽지 않고 `얼’과 `굴’을 따로 떼어냈다. 얼은 정신으로 봤다. 넋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굴은 얼이 담긴 동굴(cave)로 해석한 것이다. 또 골(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얼굴이란 정신을 형성하고 있는 틀이라고 본 것이다. 정신은 마음이기 때문에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을 그대로 표출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얼굴’을 인식했다.

선민사상에 쪄들어 있는 유대민족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예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고 있는 마음의 빛은 개신교도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설파했을 때 회당 안에 가득 찬 유대교인들은 현창곡목사의 설교에 열화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피력하며 성령을 지니고 마음의 영을 간직하고 있다면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보듬고 이해하고 화합해야 함을 강조했다.

현창곡의 얼굴론은 남들이 미치지 못하는 독특한 그만의 담론이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얼굴이지만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전연 다른 철학으로 논해진다. 그래서 한자어(漢字語)를 보면 똑 같이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글자에 따라 그 해석범위는 엄청나게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가장 많이 쓰이는 볼 견(見)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제 각기 의견이 다르다. 개개인마다 말이 다른 것은 견해차이다. 그래서 싸운다. 남의 의견이나 견해는 돌보지 않고 오직 자기 식대로만 본다면 `볼 견’이다.

다음으로는 `볼 시(視)’다. 이는 시각 차이를 나타낸다. 위에서 보느냐, 아래서 보느냐다. 동쪽이냐, 서쪽이냐로 구분해도 된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짐이다. 차원이 다르게 본다면 시각 차이는 분명히 나게 되어 있다. 최종적으로 `볼 관(觀)’을 들 수 있다. 볼 관은 치우침이 없이 봄을 말한다. 중심을 가지고 이쪽저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거기에 있다.

다 같이 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의 한자어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오직 주관에만 입각하여 자기식대로만 고집을 세운다면 세상 보는 눈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90도만 보는 것은 한쪽 눈으로만 보는 것과 같다. 이보다는 한결 났지만 자기가 앉아있는 쪽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의 경우에도 180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세상은 넓고 둥글다. 무한히 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360도를 휘둘러보는 폭넓은 관점에 서야 한다. 세상사를 객관화 시켜놓고 멀리서 바라봐야만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게 된다. 일신의 영욕을 돌보지 않는 사생관(死生觀)도 그래야만 생겨난다.

현창곡목사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어느 종교에서도 다 함께 신봉하는 사랑과 마음의 빛을 담아낸 것은 참으로 깊이 있는 관찰의 덕분이라고 보인다.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뜻과 마음을 합쳐낸다면 우리는 평화와 안전 그리고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달관(達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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