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몇 년 전의 여름휴가를 회상하며
<대구논단>몇 년 전의 여름휴가를 회상하며
  • 승인 2010.08.01 14: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은규 대구보건대 교수

한 동안 `시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때문인지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정녕 가족들과는 피서다운 피서 한번 제대로 못가다가 몇 년 전 여름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어디를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토요일을 택해 비교적 가까운 거창의 금원산 자연휴양림을 당일로 갔다 왔다.

출발 당일 일찍부터 일어나 이것저것 챙기던 집사람이 소풍 준비하는 어린 아이 마냥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동안 말은 없었지만 얼마나 나를 원망하며 살았을까? 그 날 즐거워했던 그 크기만큼이나…. 그 때 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가족들을 위해서도 더욱 많이 노력해야지”라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옛날 금빛 원숭이가 날뛰어 한 도사가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을 담고 덕유산과 함께 영·호남의 경계를 짓고 있는 금원산. 옛 선비의 지조처럼 하늘에 닿을 듯이 곧게 뻗어 있는 나무 숲 사이로 쉼 없이 흐르는 속살 같이 맑은 냇물. 한 폭의 그림처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금원산 일대는 내가 갔을 때 막바지 피크가 지났을 즈음임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 없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인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던 탓일까?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계곡마다 빽빽이 들어 차 있는 사람들, 주변에 즐비하게 늘려 있는 젖은 옷가지들.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와 피서객들의 배를 채우고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음식물 흔적들이 왠지 마음 한 구석을 씁쓸하게 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미리 자리 잡은 사람들이 텐트 주변으로 별장 정원 크기만큼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돗자리 하나 펼 자리를 찾느라 힘들었던지? 한 시간 정도를 헤매다 겨우 한 평 남짓한 자리를 그것도 더부살이로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식사 때가 되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심하게 매운 연기가 바람을 타고 와 우리를 몹시 괴롭혔다. 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숯불구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살을 찌푸리며 눈과 목이 따갑다고 호소했지만 결국 숯불 작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을 두고 `의지의 한국인’이라 하는 것일까? 억지로 참으며 식사를 강행하고 있던 우리 밥그릇에 물장난하고 있던 사람들의 물줄기가 쏟아졌다. 그 사람들에게도 일 년에 몇 번 없을 피서이려니 하고 이해는 했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에 대한 아쉬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은 모처럼의 여름휴가였던 걸로 기억된다.

오래전 일본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그 곳 사람들의 친절과 질서의식에 무척이나 좋은 인상을 받았고, 거리의 깨끗함에 기분이 매우 상쾌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일 텐데 어떻게 그렇게도 깨끗할 수 있을까? 국민들의 뛰어난 질서의식과 보이지 않은 보도 옆의 화단 속까지 거의 수색하다시피 해서 쓰레기를 찾아내는 환경미화원들의 모습 속에 그 해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오늘의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을 가능케 한 국가의 경쟁력은 아니었을까? 일본에 있는 동안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미안할 정도로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본인조차 바빠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약도를 그려주는가 하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면 직접 목적지나 안내소로 데려다 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일본의 백화점이나 지하철역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본 사람이면 남을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한번쯤 놀랐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서 왼쪽에 한 줄로 붙어 서는 사람들과 비워져 있는 오른쪽 공간을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계단이나 다른 통로에서도 마찬가지거니와 이런 풍경들은 일본의 다른 어디에서도 어김없이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면 습관처럼 몸을 한쪽으로 붙이곤 한다. 비워진 한쪽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음에도 ….

외국을 다니다 돌아오면 새삼스레 우리나라가 아름다워 보인다고 한다. 특히 가도 가도 벌판밖에 보이지 않는 광활한 지역을 갔다 오면 아기자기 하긴 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푸른 산과 들, 철도를 따라 국토를 종횡하는 강줄기가 그림처럼 예쁘게 보인단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위협하는 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사람인 듯하다.

숲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백 년이지만 버려지는 것은 일 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행락객들의 놀이터가 되어 고기 굽는 냄새와 고성, 음주가무의 흔적으로 뒤덮인 우리 강산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절제하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 요란스레 울어대던 금원산의 매미소리에도 우리 아이는 평소와 달리 온 종일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그것이 소백산맥 자락에서 불어오는 맑디맑은 공기 덕택이었다면 우리에겐 아직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