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김지길(金知吉)목사의 사회참여
<대구논단>김지길(金知吉)목사의 사회참여
  • 승인 2010.08.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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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대기자

종교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가 믿는 종교에 따라 용어가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소천(召天), 천주교는 선종(善終)이다. 불교는 여러 가지 용어를 쓰는데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열반(涅槃)이다.

천도교는 환원(還元), 원불교는 원적(圓寂). 왕이 죽으면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는 졸(卒), 선비는 불록(不祿), 일반 사람은 사(死)다. 뭐라고 쓰던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영생이나 극락왕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여 영원히 사는 길을 염원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바라는 바대로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천당이나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종교의 힘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다. 때마침 폭염이 내리누르는 8월7일 올해 미수(米壽)인 김지길 목사가 소천 했다. 그의 죽음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를 위해서 헌신한 봉사정신 때문이다.

그는 감리교 신학대를 나와 과묵하고 근엄한 태도를 가지며 누구에게도 앙금이 될 말은 하지 않는 인품으로 평생을 살았다. 말이 씨가 되어 자칫 상대를 어렵게 만들거나 성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성품이었다.

그래서 그의 생활신조는 성실과 정직이다. 그는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백제 시절에는 황산벌 싸움터였고 금마면 큰 마륵탑은 국보다. 호남선과 전라선의 갈림길로 교통의 요지다. 신앙생활은 고향이 아닌 충청도를 중심으로 펼쳤다. 조치원과 대전에서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는 한편 평성고등공민학교 교장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학업을 도왔다.

그 뒤 호수돈 여중고의 재단이사, 대전보육대 이사장도 역임하게 된다. 교육계와 인연을 맺고 그 실태를 알게 되면서 교육부의 관료화와 일부 사학재단의 비리 등에 대해서도 꿰뚫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필자가 상지대 사건을 중심으로 집필한 교육평론집 `사학 죽이기’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는 만사를 제치고 이기택총재와 함께 축사를 하기도 했다. 축사를 통하여 “상지대 설립자 김문기가 학교에 복귀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갈파했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김지길목사의 예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확정판결을 선고했다.

그는 설립자가 분명한 학교를 교육부와 일부 교수들이 불법적으로 탈취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안목은 성경과 교회만을 맴도는 일반적인 목회자들과는 그 틀을 달리한다.

헌정을 중단시킨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단연코 이를 반대하는 대열에 동참한다. 영향력이 큰 감리교 아현교회에서만 30년 가까이 활동한 그가 독재정권의 유신 쿠데타에 팔을 걷어 부치고 반대에 나서자 기독교계는 아연 긴장한다. 유신을 반대하면 탄압 받을 것이 명약관화했지만 사소한 이해를 초월한 김목사의 자세는 꿋꿋했다.

TK정권 하에서 지역감정해소 국민운동협의회를 조직하여 상임의장을 맡았던 것도 신념의 소산이다. 목회자이면서도 사회참여에 과감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교육계와 인연을 맺은 후 실태를 낱낱이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관료와 유착한 좌파 탈취세력이 있는가 하면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일부 사학재단의 문제점도 그의 매서운 눈을 빗겨갈 수는 없었다.

교육이 바로 서는 것이 사회정의를 일깨우는 일이라고 확신을 가진 그는 독재 권력과 연결된 모든 부정비리를 청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다만 나쁜 풀을 뽑으려다 좋은 나무뿌리까지 건드릴까 걱정하게 되었으며 그가 가훈으로 정한 “상황판단은 정확하게, 그 처리는 덕스럽게”라는 신조가 굳혀져 항상 올바른 결정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덕성은 교회나 사회에서 가장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온갖 시민사회단체들이 서로 김지길목사를 상임의장이나 대표로 모셔가려고 경쟁을 벌이다시피 했지만 결코 아무 단체나 개입한 일은 없다. 기독교계에서는 NCC회장으로 추대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도 역임했다.

감리교를 총괄하는 감독회장은 특히 중요한 자리다. 평소의 소신으로 교회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많은 글을 썼는데 10여 편에 달하는 저서를 남겨 웬만한 전문문필가를 뺨친다. 평생의 신앙심을 응축한 설교선집 3권을 한 질로 출판하여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는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로 아현교회의 언덕바지까지 넘쳐났다.

`5분간의 인생론’ `지금이 그럴 때냐’ `너 하나님의 사람아’ `저 깊은 곳을 향하여’ `물 위를 걸어라’ `오늘의 구원’ `한국교회 사회의 어제 오늘 내일’ `민족화합과 공동체 의식’ `천국복음운동’ 등은 책 제목만 봐도 신념의 일단을 알게 하는 바 있다.

주요논문을 살피면 `한국사회의 지역갈등에 대한 한국교회의 해소방안’ `교회와 사회관계에서 본 직능적 목회’ `다원사회의 기능목회에 대한 소고’ 등은 교회 내에서도 무겁게 본다. 정치적 뿌리가 깊은 지역갈등을 교회의 힘으로 해소해 보자는 종교적 화해의 제의는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지길 목사는 많은 것을 남기고 말없이 소천 했다. 그의 큰 뜻에 삼가 존경을 표하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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