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오리도 물에 빠져 죽는다
<대구논단>오리도 물에 빠져 죽는다
  • 승인 2010.08.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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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오리도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한다. 얼음이 둥둥 뜬 한겨울에도 예사롭게 물에 떠서 먹이를 찾으며 살아가는 오리가 물에 빠져 죽는다니 어찌된 셈인가? 우선 영양이 부족하여 털에 기름기가 분비되지 않으면 빠지고 만다고 한다.

이는 필자도 경험한 바가 있다. 1980년 초 필자는 효목동으로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하게 되었다. 형편이 돌아가지 않아 집값의 반을 은행에서 융자 받았는데 이것은 몹시 큰 부담이어서 남은 월급으로는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하여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2월말에 이사를 했는데 그해에는 몹시 추웠다. 아파트 둘레에는 아직 농사를 짓던 논밭이며 물웅덩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도 꽥꽥거리는 소리가 나서 내려다보았더니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었다. 오리로 추정되었다.

아파트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으로 억지로 살펴보니 오리들이 무엇인가를 주워 먹고 있었다. 모든 것이 꽝꽝 얼어버린 어두운 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주워 먹는단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스티로폼 조각이었다. 먹을 것이 없자 건축에 쓰이고 남은 흰 스티로폼 조각을 마구 뜯어 먹었던 것이다.

이튿날 낮에 오리들이 있던 곳을 살펴보러 갔더니 골함석으로 높이 담을 쌓아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5층 아파트에서만 겨우 조금 건너다보일 뿐이었다. 집으로 올라와 내려다보아도 폐목재 더미 밑으로 들어갔는지 오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5층 높이에서 식은 밥 몇 덩이를 던져 넣는다 하여 오리가 제대로 찾아먹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뒤, 퇴근하니 아내가 말하기를 건축자재를 실어내던 인부들이 웅덩이에서 죽은 오리를 건져 길가에 던져놓더라고 했다. 그 오리는 원래 흰 오리였는데 진흙과 연탄가루에 찌들어 오리인 줄 모를 정도였고, 항문으로는 스티로폼이 밀려나오고 있더라는 것이다.

오리들이 빠져죽은 웅덩이는 오리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삶의 현장이었지만 끝내는 무덤이 되고 말았다. 이 오리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아무리 육체적으로는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고 하지만 정신적인 영양분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우리 또한 이 시대의 웅덩이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 아닌가.

둘째, 둘레의 환경이 오염되면 또한 오리는 빠져죽고 만다. 각종 화학 세제가 넘쳐나 털에서 기름기를 빼앗아버리면 물에 뜰 수가 없게 된다. 오리에게 강제로 샴푸 목욕을 자주 시키면 털에 기름이 모두 빠져 푸석푸석해 지고 만다고 한다.

셋째, 유황을 먹인 오리도 물에 뜰 수 없다고 한다. 유황오리는 독을 약으로 바꾸는 일이기는 하지만 합자연(合自然)은 아니다. 유황을 먹이면 오리는 체구가 크지 않고 털에도 기름이 분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들어온 독극물을 막아내는데 온힘을 다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이처럼 아름다운 생명 순환의 고리를 기어이 끊어버리는 것이다.

넷째, 야생에서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면 또한 물에 빠져죽는다. 부화장에서 인공 부화된 오리 중에서 어릴 때부터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오리들은 물에 빠져죽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게으른 오리는 물에 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리는 날개 밑으로 부지런히 부리를 문질러 기름을 털에 발라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하면 결국 물에 뜰 수 없다는 것이다.

어미를 통해 가르침도 잘 받아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기름을 찾아 몸에 바를 줄 아는 지혜와 도전의 용기를 길러야 한다. 일시적인 안락을 찾아 현실에 안주하다가는 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오리가 물에 빠져죽듯이 우리도 그저 현실에 안주하다보면 영육(靈肉)이 함께 죽고 만다. 높은 이상을 세우고 부지런히 도전과 의지라는 기름을 바르며 생기 있는 삶을 가꾸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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