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가을은 그냥 오는가
<대구논단>가을은 그냥 오는가
  • 승인 2010.08.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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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늦더위의 위력이 대단하다. 여름이 무더울수록 다가오는 가을이 더욱 찬란하리라는 기대 속에서 꾹 참는다.

옛날처럼 봄, 가을만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스쳐간다. 옛 중국 상(商)나라와 주(周)나라 때에는 봄과 가을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여름과 겨울이 더 보태어져 춘하추동이 되었다고 한다. 봄과 가을밖에 없으면 사람의 생활 모습도 그만큼 단순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걱정거리도 상대적으로 적었을 듯싶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건기(乾期)와 우기(雨期)로만 계절을 나누듯이 아마도 당시에는 계절을 여럿으로 나눌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지역은 봄은 별로 없고 여름이 자꾸 길어진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로만 불러야 할 때가 올는지도 모르겠다.

나무의 나이테를 나눌 때에 일반적으로 춘재(春材)와 추재(秋材)로 나눈다. 춘재는 봄과 여름에 자라는 흰 부분을 가리키고, 추재는 가을 겨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테라핀이라는 기름을 뽑아내어 자신을 감싸는 부분을 가리킨다. 추재는 붉고 단단하여 벌레가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 썩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추재가 많을수록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아진다. 추재가 많은 나무를 가리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하는 것은 추재의 밀도가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나무가 스스로 겨울을 나기 위한 대비책으로 춘재와 추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나이테는 역사책으로서 기능을 갖추게 된다. 즉, 춘재가 넓을수록 그 해에는 비가 많이 왔으며 따라서 곡식도 잘 되어 안정된 사회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춘재가 좁은 해에는 상대적으로 비가 적어 흉년이 들었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민심도 흉흉했으리라는 추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계절을 어떻게 대하고 보내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을 읊조리곤 한다. 우리 조상들은 왜 한해를 봄 · 여름 · 가을 · 겨울로 나누어 불렀을까? `봄’은 `볼 것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른 봄 양지쪽에는 수많은 씨앗들이 싹을 틔워 밖을 내다보지 않는가? 또한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이것저것을 살펴본다.

`여름’은 `열매의 열림’과 관계 깊을 듯하다.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리고 열매는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어야만 한다. 여름은 인고의 계절이다, 우박을 포함한 비바람도 그렇지만 각종 벌레와 짐승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비로소 실과(實果)가 된다.`가을’은 `추수’와 관계 깊은 말로 보인다. 경북 북부 지방에서는 가을걷이를 가리켜 `갈(가을 혹은 가실)한다. 이 이름은 `거두어들인다. 즉 `갈무리’와 관계 깊은 말로 보인다.

`겨울’은 `움 속에 거(居)한다.’ 즉 `거움’을 떠올리게 한다. `거움’이 `겨움’, `겨울’로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계시다’라는 말이 `겨시다’에서 왔다고 읽은 적이 있다. `겨시다’가 `거(居)시다’에서 왔다고 보면 추운 겨울에는 집(움) 안에 있다가 봄이 되면 먹을 것을 찾아보고 또 이웃은 어떻게 지냈는지 살펴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사계절 이름은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한 이름으로 보인다. 우리 옛 어른들은 4계절을 다시 24절기로 나누고 그때마다 해야 할 일을 살펴 실천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다가오는 계절을 맞는 마음가짐이었다.“아무리 무더운 한여름에도 땅 속 저 밑에는 차가운 기운이 자리를 잡고, 살을 에는 한 겨울에도 땅 속 저 밑에는 따스한 기운이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늘 이 순간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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