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중국에만 주천(酒泉)이 있는 게 아니다
<대구논단> 중국에만 주천(酒泉)이 있는 게 아니다
  • 승인 2009.02.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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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이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술에는 별별 이름도 많기에 호주객(好酒客)을 부르는 이름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술을 마신 다음 나타나는 태도와 양상에 따라 붙여지는 이름도 있다. 사람마다 주량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 어떤 이는 한 잔만 마시고도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열 잔을 마셔도 표도 안 나는 경우도 있다.
술을 마신 다음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약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상식이다. 주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 잔 만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술주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비실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작태를 못내 싫어하는 사람들은 “술이 술을 먹었군!” 하며 혀를 끌끌 찬다. 멀쩡한 사람이 보기에 술 취한 사람의 행태는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술 취한 사람이 더듬더듬 자기 집 찾아가는 걸 보면 용하기 짝이 없다. 도저히 못 걸어 갈 것처럼 보였는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면서도 집은 찾아간다. 물론 길가에 누워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술 먹은 사람을 크게 반기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음주인구가 상상 의외로 많아진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남녀평등을 떠나 여성의 사회적 활동범위가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에 당연한 추세다.

심심찮게 적발되는 음주운전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음주가 보편화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게다가 나이 어린 여학생들까지 끼어들고 있어 자라나는 2세들의 건강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

술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 나라에 따라서는 강력한 술 금지법을 만들어 시행한 일도 있으나 지금까지 성공한 나라는 없다. 미국에서도 술을 금지한 일이 있었으나 결국 전설적인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만 살 찌워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술과 담배는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을뿐더러 점점 늘어만 가는 현실을 곧이곧대로 인정해야만 한다.

술을 좋아하는 나라로 손꼽히는 독일은 맥주가 유명하고, 불란서는 포도주, 미국은 위스키, 러시아는 보드카, 중국은 배갈이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소주가 제일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전설을 지닌 주선(酒仙) 두 사람이 있다. 둘 다 시인으로 일세를 누볐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에는 술을 주제로 한 게 많다.

특히 중국의 감숙성(甘肅省)에는 아예 지명이 주천(酒泉)이란 곳이 있는데 그 지역의 물맛이 술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 두보(杜甫)는 여양왕(汝陽王) 이진이란 사람이 술을 너무 좋아하여 왕을 그만두고 주천태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의 한 대목이다.

汝陽三斗始朝天 여양왕은 세말 술을 마시고서야 조정에 나가고
道逢鞠車口流涎 길에서 누룩 실은 수레를 만나 침을 흘린다
恨不移封向酒泉 주천태수 되지 못함이 한 이로다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이백(李白)은 우리들에게 이태백으로 더 알려졌다. 그는 적벽강에 배를 띄우고 달을 벗 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물 속에 뜬 달을 붙잡으려고 뛰어들어 신선이 된 사람이다. 그 역시 주천 땅을 그리며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시를 남겼다.

天若不愛酒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하늘에는 주성이 없었을 것이고
地若不愛酒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地應無酒泉 땅에는 응당 주천이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읊은 주천지방은 지금 중국의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는 위성발사센터가 자리 잡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우주경제특구다. 2007년에 발사된 달 탐사위성의 이름은 항아(嫦娥)1호다. 항아라는 여인이 남편 몰래 불사약을 먹고 달 뒤에 숨었더라는 전설을 따라 붙여진 이름인데 혹시 이백과 만나지나 않았을까.

그런데 이 주천은 중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영월에 가면 주천이 있다. 이 곳 역시 목마른 나그네가 바위 틈새로 흐르는 물 한바가지를 떠먹었는데 향기로운 술이었다는 전설의 고장이다. 주천(酒泉)면민들은 지금도 주천 샘물을 잘 보호하고 있다. 또 주천면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네 사람이나 진출시킨 자부심도 대단해서 샘물이 아닌 `샘술’로 기운을 돋운 덕이라는 덕담도 오고간다.

주천에서 수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강물의 흐름은 법흥사 적멸보궁과 함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사자산과 구봉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도 그치지 않는 입구에 자리한 주천은 중국처럼 위성은 발사하지 않지만 빙허루(憑虛樓)에 올라 샘술로 목을 축이며 동강 한반도 지형을 눈 감고 상상하는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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