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것들
<기고>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것들
  • 승인 2010.11.2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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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백 기 국민연금공단 동대구지사장

60대 부부의 이야기다. 자식들은 다 성장했고 남편은 몇 년 전 정년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자식은 셋을 두었는데, 결혼한 아들과 손자까지 한 집에 살고 있다. 이들을 뒷바라지 하고 어린 손자를 돌보는 것이 이 나이든 아내 Y씨의 하루일과다.

남편은 기원에 나가 바둑을 즐긴다. 이 정도면 보통의 은퇴생활을 하는 우리 주변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일요일이면 Y씨는 평소 즐겨하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을 나서고, 이런 Y씨를 승용차로 데려다 주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지난겨울 몹시 추웠던 일요일,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Y씨는 집을 나섰다. 이런 Y씨를 동호인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까지 태워 주었지만, 남편은 이내 돌아갈 수가 없다.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그림 그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아내와 그림도구가 빼곡히 담긴 무거운 가방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예상과는 달리 대여섯 명이 몰려나오는 것을 보고 남편은 그제야 기원으로 차를 몰았다.

Y씨는 동호인들과 팔공산으로 향했고, 단 몇 분도 아깝다며 그늘지고 살을 에는 칼바람에도 꼿꼿이 앉아 캔버스를 후벼 파듯 몰입을 했다. 산 그림자 드리우는 저녁 무렵 아침에 출발했던 그 장소로 돌아가는 길, 그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서야 휴대폰을 꺼내 든다.

“저기요. 팔공산에서 출발하는데 삼사십 분은 걸릴 것 같아요. 천천히 나오세요.” 남편에게 거는 전화였다. 운전을 하던 내가 좀 이상해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마디 했다. “아니 다 왔는데 무슨 삼사십 분...” 그는 빙그레 웃으며, “우리 그이 바둑 두잖아요. 전화 받고 바로 끝낼 수 없을 텐데. 제가 기다리는 게 좋아요.”

은퇴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며, 배려가 무엇인지를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 보여준 이야기다. 노후설계업무와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언제부턴가 이런 모습과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바람직한 은퇴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확인한다는 의미도 크고, 좋은 강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행복한 은퇴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국민연금공단 노후설계서비스 자료에 의하면 건강·재무·대인관계·일·주거·여가(취미) 이상 여섯 가지 요소를 들고 있다. 당연해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다. 소개한 사례의 부부는 이상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경우다.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정기적인 연금 수급 등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주거를 자녀들과 같이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배우자와의 관계도 이상적이다. 여가생활도 소개한 바와 같이 이들의 생활에 활력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은퇴기에 있는 많은 분들은 길어진 노후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요즘은 본인의 예상보다 오래 사는 것을 리스크(위험)로 인식하는 시대다. 이를 `장수(長壽)리스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주요 선진국보다 2배 이상 높다는 한 민간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예상 은퇴기간 대비 예상치 못한 은퇴기간의 비율

인 장수리스크는 우리나라가 0.87인데, 미국 0.37, 일본 0.35, 영국 0.33이라는 것이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80.7세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균수명만큼만 살 것으로 생각하고 인생설계를 해서는 곤란하다.

기대여명과 관련된 자료에 의하면, 현재 60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의학의 발전까지를 고려할 경우 남자가 30.75년, 여자가 36.63년이라고 한다. 노후준비를 성공적으로 하려면 `길어진 노후’, `장수리스크’부터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면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하고, 왜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연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

업무상 연금을 수급하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가입하고 연금보험료를 많이 냈을텐데...’ 지금 활동기에 있는 분들은 꼭 귀담아 들을 일이다. 또 있다. 소개한 사례처럼 배우자와의 원만한 관계유지다.

배우자가 있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원만한 부부가 훨씬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말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만이 아니다. 사랑의 빈곤은 인생을 황폐화시킨다.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양속담 하나를 소개하면서 맺는다.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 및 최악의 재산은 배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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