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제막식과 함께 해발 403m인 황장재에 자리 잡게 된 표주석에는 황장재가 영덕의 발상지로서 지금의 영덕군을 태동시켰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표주석 정면 상단에는 지품면 황장재라는 큰 글자와 뒷면 일부분에 영지회 고문, 임원, 운영위원 등 모두 52명의 이름을 넣었다.
영덕군과 청송군의 경계지점인 황장재의 표주석은 영지회 회원들의 성금 2천 여 만원으로 세워졌는데 사후관리가 관건이다.
34번 국도변 바로 옆에 세워진데다 양 군(郡)과의 경계지에 있어 꾸준한 관리가 더욱 요구된다.
`돌 하나 세운 것이 뭐 그렇게 대단 하느냐’는 식의 반문도 있을 수 있겠지만 황장재에 자리 잡은 이 표주석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조선 시대에 영덕지역의 소국인 야시홀군(也尸忽郡)이 오늘의 지품리, 기사리 지역이 발상지로 성장하면서 부족단위의 공동체로 형성됐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경덕왕(742~763) 16년에 야시홀군이 야성군으로 고쳐져 현 오천리와 삼화리를 중심으로 했고 고려태조 23년에는 신라의 야성군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영덕군으로 고쳐졌다.
이어 1914년 3월 영해군이 영덕군에 흡수되면서 영덕군은 9개면과 116개의 리·동을 관리하게 돼 지품면이 영덕군의 발상지란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지품면이 고향으로 영덕에 거주하는 영지회 회원들은 황장재에 새워진 표주석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모처럼 세운 표주석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회원들의 관심으로 표주석 주위가 깨끗한 환경으로 지속될 경우 학생들의 야외 학습장소로 각광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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