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세계 경제 위기와 중국의 역할
<팔공시론> 세계 경제 위기와 중국의 역할
  • 승인 2009.03.0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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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계명대학교 국제학대학 중국학과 교수)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3월 5일 시작되었다. 이 대회의 주제인 중국의 경기 부양 대책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경기 회복을 위해 투자할 자금 규모와 구체적인 정책이 중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에도 세계는 중국을 주목하고 있었다. 만주족인 청 왕조가 한족의 명나라를 정복하고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청나라는 한족의 저항을 회유하고 굴복시키면서 주변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시켜 나갔다. 지금의 외몽골을 병합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강 지역과 티베트 지역을 흡수하여 명나라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거대 제국으로 판도를 넓혔다.

청나라가 이처럼 제국의 판도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명나라 때부터 성장한 중국의 국내 경제의 발전 때문이었다. 한때 중국 `자본주의맹아론’이 제기될 정도로 16~18세기 양자강 유역의 강남 경제의 발전은 비약적이었다. 강남의 농촌 상품 경제의 발전과 도시 소비 인구의 증가를 기초로 전체 중국은 하나의 거대한 생산과 유통 및 소비의 자급자족적 시장 경제 구조를 형성하였다.

국내 경제의 발전을 기초로 한 중국의 상품 시장은 16세기부터 해외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차와 비단, 그리고 도자기로 상징되는 중국 상품은 세계 시장을 지배하였으며 그 대가로 세계의 은(銀)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던 당시에 세계 은의 3분의 1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이 세계 금융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경제의 발전과 세계 최대 규모의 은 보유량을 바탕으로 청 제국의 번영이 가능하였다. 그 전성기가 18세기 건륭제의 시대였다. 건륭제는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위대한 황제로 평가된다.

그는 재위기간만 60년이었고 아들 가경제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준 뒤에도 5년 동안 섭정하였으니 사실상 65년 동안 황제 노릇을 한 것이다. 그 동안 제국의 판도로 넓히는 열 번의 대외 정복사업을 성공시켜 스스로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래서 건륭제의 통치시기를 `건륭성세(乾隆盛世)’라고 부른다.

당시 중국으로 집중되는 세계 통화인 은의 흐름을 돌려보기 위해서 영국은 마카트니(George Macatney) 무역사절단을 보내어 중국의 시장 개방과 무역의 확대를 요구하였다. 건륭제는 “청나라는 땅이 넓고 산업이 풍족하여 없는 게 없으니, 만일 너희 오랑캐들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은혜를 베풀 뿐이다.” 라고 거절하였다. 개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건륭제는 다른 사건을 핑계로 대외 개방을 더욱 좁혀서 광저우(廣州)만 개방하는 폐관정책으로 후퇴하였다.

이런 번영을 누리던 청나라가 그 후 50년도 가지 못하고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제국의 건설이라는 `성세(盛世)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와 개방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다. 세계 변화를 도외시하고 중국만의 성세 의식 속에서 향락과 부패에 빠져버린 건륭 시기는 쇠퇴와 붕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건륭제의 잘못된 선택이 150년 중국의 식민지 굴욕 시대를 불러왔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중국이 선택할 길은 어떤 것일까? 13억 중국인의 소득 증대와 지역 균형 발전 및 국가 산업 구조의 혁신 등 중국 국내 경기를 회복시켜 내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당면한 급선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대책이 중국만을 위한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주변 국가와의 공생과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기여할 미래지향적인 대책이어야 할 것이다.

세계 최대의 달러 보유국이자 최대의 소비시장이며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경기회복 정책이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건륭제의 시대와 마찬가지이다. 또 다시 중국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은 개방과 변화를 지속하며 세계와 협력하고 공생하는 새로운 공존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대국굴기(大國?起)’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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