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살아간다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
<대구논단> `살아간다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
  • 승인 2009.03.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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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학 교수)

언젠가 어느 신문에서 읽었던 25세 여성의 사연이 생각난다. 그녀가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그녀의 아빠는 평소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4남매에게 자장면을 사주고는 “어서 먹고 나가 놀아라.”고 했다.

그녀는 친절한 아빠가 너무 이상해서 안방 앞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술에 취한 아빠의 호통으로 동생들과 놀이터에 나가 그네를 타고 있을 때 119 구급차가 그녀의 집 앞에 멈추었고 잠시 후 그녀의 아빠와 엄마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녀의 아빠가 엄마에게 억지로 독극물을 먹이고 자신도 같이 들이킨 것이었다. 그것이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고, 아빠는 알코올중독에 당뇨, 고혈압, 신부전증까지 앓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술을 마시며 살고 있다.

그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에겐 `다발성증후군’이라는 병이 찾아와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되었고 남아있는 왼쪽 눈마저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기저귀를 차야 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녀는 지금 걸을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 앞으로 사랑하는 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40℃ 고열에 시달리며 `죽어야지, 이대로 죽어야지’ 하며 `저주받은 운명’을 자책하던 날들, 남은 평생을 치료를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현실에 몸부림치면서도 그녀는 결코 남 앞에서 울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에겐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보일거야’라며 빌려온 책을 펼쳐들고, 동생들에게 찌개를 끓인 아침을 먹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나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고 싶어 한다.

인생은 급물살에 실려 가는 보트처럼 세월의 강을 따라 흘러간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한 세월이 흘러 어느새 백발노인이 된다. 진나라 시황제도, 대기업 총수도 세월 앞엔 지극히 공평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중태에 빠졌던 환자가 회복되고 있다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또, 거동이 불편한 주름 깊은 노인의 삶은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삶의 시작은 누구에게도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선택한 삶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야만 한다.

경제 불황과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힘들게 선택한 죽음을 종종 보기도하지만 왠지 그러한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죽음 역시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조급히 기다리지 않아도 그리 멀지 않는 훗날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인 것을….

까마득한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 몇이 모여 “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 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면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의사, 교수, 선생님 등이 주로 오르내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들 나름대로 큰 꿈을 안고 성장하지만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그 꿈의 크기가 살아온 세월의 길이와 대부분 반비례하고 있음을 본다.

청년실업과 대졸자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졸업 후 그저 “괜찮은 직장만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한다.

현실을 무시하고 살아갈 순 없지만 우리 모두 살아갈수록 꿈의 크기도 눈 덮인 겨울언덕에서 굴러 내리는 눈덩이처럼 커져갔으면 좋겠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그대로 되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나는 생물학적 또는 의학적 기준을 떠나 `꿈을 가진 삶’,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삶`일 때 진정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빨리 늙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바쁘게 무엇인가를 쫓아가던 삶이 갑자기 느슨해지고 꼭 해야 할 일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과 허무감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은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라 하더라도 꿈이 없으면 언제 도살장으로 갈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육축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죽음에 이르는 병’, 그것은 다름 아닌 `절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늘은 보일거야’ 라며 매일 아침 책을 펼치는 그녀의 삶에서 진정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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