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아이고 아이고”
<팔공시론> “아이고 아이고”
  • 승인 2009.03.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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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민 (대구대학교 재활과학대학 교수)

미국 자치령인 북마리아나 제도의 괌섬에서 비행기로 약 25분을 타고 북쪽으로 가면 사이판이 나오는데 그 사이 작은 섬 `티니안’을 지나간다. 사이판에서 다시 약 5~6인승 비행기로 갈아타서 얼마가지 않아 `티니안’ 섬이 나온다. 티니안은 면적 약 101㎢로 인구는 약 3천 명 정도 되는 작은 섬이며 원주민 중 45%가 한국계 혈통을 가진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티니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 5천여 명이 일본군에 의한 강제 징용돼 희생된 곳이기도 하지만,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나라 해방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B29 비행기가 발진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고 이영식 목사는 5000여명의 한국인 유해가 매장된 조선인지 묘를 티니안 정글속에서 발견하고 유해에 키스를 하며 통곡을 하였다. 1977년 그 곳에 한국인들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남양군도에서는 최초로 민간인에 의하여 한국인 위령 비를 세우고 유해를 본국에 봉환하여 망향의 동산에 안장하였다. 유골 1,000구가 이곳에 묻혀 있으며, 위령 비 옆에는 당시 죽은 한국인들을 화장한 화장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1970년대 중반쯤 고 이영식목사가 괌을 방문하였을 때 손녀인 이예숙(현 경북영광학교 교장)과 함께 괌 전체를 차로 관광하던 중 배도 고프고 갈증이 나서 인근에 있는 바나나 나무가 많은 집을 발견하여 잠시 쉬고 가기로 하였다.

10살 정도 된 원주민 어린이를 만나 바나나와 물을 얻어먹은 후 어린이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말을 하니 우리들을 아주 반갑게 맞이하면서 며칠 전 티니안에서 온 고모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 고모는 한국 사람들을 잘 안다고 하면서, 자기가 어렸을 때 티니안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종일 중노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매일 고향에 가고 싶어서 “I Go, I Go“ 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고 이영식 목사는 ”I Go, I Go“의 뜻은 집에 간다라는 뜻이 아니라 노동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우는 소리라고 그 뜻을 풀이해 주었다. 그들이 지금도 티니안에 있는지 묻자, 대다수는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죽이고 화장하여 밀림에 묻고 나머지는 남아서 원주민들과 결혼하여 티니안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이 조선인지 묘를 발견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팔라우에도 있다. 일본 군인들이 한국인들을 강제로 팔라우로 노역을 보냈는데 한국인들이 다리를 지으면서 “아이고 아이고” 했다하여 그 다리의 이름이 “아이고”가 된 경우도 있다.

필자는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티니안 사이판 잊혀 진 전쟁: 어떤 한인들”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멘트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연합군의 이름으로 맞선 미군과의 싸움 어디에도 한국이란 이름과 한국인의 이름이 전사의 어느 문맥에도 나오지 않는다.

비록 한국인의 이름은 없을지라도 그 싸움에 우리의 몸은 뛰어 들어가 있었다. 그 전쟁에 동원된 한인들의 숫자는 600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만 30만 명이다. 6.25 한국동란의 아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러나 그 싸움은 어쨌거나 쌍방이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땅에서 싸운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이름으로 남의 땅에서 숨져간 태평양 전쟁의 아픔은 오히려 한국동란보다도 더 크고 더 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그 전쟁을 일제 36년사의 마지막 부분으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한 페이지로만 지나쳐 버리고 만다.

잊어버린 것인가? 잊으려 하는 것인가? 태평양 전선을 돌면서 전선마다 방치되어있는 고인들의 넋과 존재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제3의 한국인들을 보고 이 전쟁을 잊어버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느낌이 옷깃을 파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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