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티베트의 역사를 지킨 승려, 겐둔 초펠
<팔공시론> 티베트의 역사를 지킨 승려, 겐둔 초펠
  • 승인 2009.03.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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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계명대학교 국제학대학 중국학과 교수)

역사를 중시하는 민족이 세계사의 주인공이 된다. 19세기에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의 역사를 강조하였다. 비록 그들이 강대국의 힘에 굴복하여 나라를 빼앗겼다 해도 언어와 역사를 지키면서 저항한 결과 나라를 되찾았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갈 수 있었다.

티베트인들의 삶과 역사도 다를 수가 없다. 티베트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금도 외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때문에 티베트를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하였고 은둔의 땅이라고 불렀다. 티베트 불교인 라마불교의 특성 때문에 신비로운 땅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이런 은둔의 땅에서 중국 정부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아서 최고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정치지도자가 되는 나라이며, 라마불교의 영향으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모두 승려로 일생을 보내게 되어 싸울 군대조차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불교에 귀의하여 수도원에서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며 은둔 생활을 계속해 온 승려들이 세속적인 정치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티베트의 모습은 우리에게 생소함마저 주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민족 위기를 맞아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 현실에 뛰어들거나 승병으로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주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들 티베트의 젊은 승려들이 독립 운동에 뛰어들도록 그 계기를 제공한 한 인물이 있었다 한다. 그는 겐둔 초펠(Gendun Choephel, 1903~1951)이라는 승려였다. 그는 청조가 멸망했음에도 티베트가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하지 못하고 오히려 중국에 재차 점령되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하였다.

겐둔 초펠은 티베트가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티베트 정치 행정가들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며 외세의 침략 속에 스스로의 정체성과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티베트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데서 시작하여 마침내 티베트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는 룩 세들러(Luc Schaedler)가 제작한 `티베트의 성난 승려(2005)’라는 다큐멘터리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겐둔 초펠은 티베트 동쪽 암도(Amdo) 지역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의 서쪽은 이슬람 문화권과 접하고 동쪽은 중국 내지와 접하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문화 충돌과 민족 갈등이 빈번한 지역이었다. 그는 이곳 수도원에서 승려로서의 전통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고 미국 선교사를 만나 새로운 문명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는 1927년부터 라사의 드레풍 사원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교리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미 그는 승려들 가운데 꽤 혁명적인 인물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1934년에 그는 라훌이라는 인도의 불교 학자와 함께 티베트 전국을 다니며 옛 경전을 찾는 조사 활동을 벌였다.

라훌이 인도 독립 운동을 하던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과 티베트 전국을 여행을 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겐둔 초펠이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새롭게 각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938년부터 8년간의 인도 여행은 겐둔 초펠로 하여금 은둔의 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였다. 그는 눈부시게 발전한 인도의 근대 문명에 충격을 받았고 인도인들의 독립 활동에 감동을 받았다 한다. 이때 그는 티베트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고 외부 세계에 대한 감동을 티베트로 알려 티베트의 젊은 지식인들을 각성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연구하여 개혁과 독립의 정당성을 찾아내려는 목적 아래 티베트정치사를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정치 활동은 티베트 정부의 주목을 받았고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그는 1949년에 석방되었지만 중국이 라사를 다시 점령한 직후 사망하였다.

겐둔 초펠의 사망으로 티베트의 개혁과 독립을 위한 그의 노력이 완성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의 저항 정신과 자유에 대한 열정은 티베트의 젊은 승려들에게 이어져서 오늘날 티베트 독립 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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