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내리는 벚꽃잎은
여자의 살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그렇게 다정하고
쓸쓸한
살빛을 본 일이 없다
보도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꽃잎을 한 줌 쥔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에 달라붙는다
전생에 나는
벚꽃같은 여자를 사랑한
남자였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여자가 복사빛으로 요염해지고
갖난아이를 젖가슴에 안을 때까지
계속피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저리도 투명하고 핏기가 없으니,
뒤를 돌아본다
나무둥치에 풍성한 머리칼을 기대고
지켜보는
다정하고 쓸쓸한 두 눈.
서울 출생.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1988),『사랑의 예감』(1992) 등이 있으며 현재 공주영상 정보대학
방송극작과 교수로 재직.
이 시인의 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상과 현실, 몽상과 생활의 부딪침을
노래하고 있으며 주제는 결국 휴머니즘과 예술주의에 귀착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멀지 않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시인이 바라본 벚꽃의 존재는
`세상 어디에서도/그렇게 다정하고/쓸쓸한/살빛을 본 일이 없다’고 할 만큼
벚꽃과 시인은 밀착돼 있다.
이 시가 지닌 한 특징은 내용 여부에 앞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벚꽃의 신선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자의 살’로 은우된
벚꽃은 `다정하고 쓸쓸한’ 이미지로 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된다.
이일기 (시인 계간`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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