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언덕에 대구100년 근대사 오롯이
동산언덕에 대구100년 근대사 오롯이
  • 대구신문
  • 승인 2012.01.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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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속 '딴세상' 동산의료원 붉은 벽돌집 3채
대구 도심 한복판, 동산의료원의 남쪽 입구를 통과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바로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과 그 주변의 고색창연한 건물과 기념물들이 그 것이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벽돌집 등을 비롯해 건물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한번 들어본다.<편집자 주>

△동산의료원의 빨간 벽돌집 3채

대구 도심 한복판, 동산의료원의 남쪽 입구를 통과하면 별천지가 나온다.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나 믿기지 않을 만큼 탄성이 절로 나는 이국적인 정원이, 건물이 사람들을 반긴다. 그제서야 동산의료원이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온 몸으로 와 닿는다.

1899년 파란 눈의 선교사가 세운 작은 병원이 요동치는 우리의 근대사를 지나는 동안 헐벗은 이들과 함께하며 이 땅의 삶과 동행해왔다는 역사적 진실을 느낄 수 있다.

교육으로 인재를 길러내고자 설립한 신명학교, 계성학교와 고딕식 첨탑이 하늘과 맞닿은 제일교회까지 이렇게 우리나라 근대화를 태동시킨 이곳은 분명 뜨는 해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동산(東山)이었다.

동산의료원 언덕을 끼고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2층 벽돌집 3채를 연이어 만난다. 1910년경 지어진, 당시 미국 선교사들이 머물던 숙소이다. 1989년 6월 15일 대구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지금은 각각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시민들에게 진귀한 역사적 사료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에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방인들의 발소리와 늦은 밥 세레나데를 부르면 누군가 창문을 열어줄 것만 같은 이국적인 정취와 낭만이 가득하다.

▲선교박물관(선교사 스윗즈 주택)

대구유형문화재 제24호인 선교박물관은 대구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이뤄지던 1906년부터
1910년경에 건축된 사택으로 전통 한식과 양식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1736년 조선조 영조시대 대구읍성 축조 때 사용된 성돌(대구읍성 철거시 가져와 사용)로 바른층 쌓기 기초를 하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길이쌓기와 1단 마구리로 쌓았다.

이 집을 지을 때쯤 대구의 지방관은 박중양(朴重陽 :1874~1955)이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양자로 알려지기도 했던 박중양은 유학시절에 쌓은 일본인 인맥과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1906년 경북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로 부임했다.

그는 조정의 허락도 없이 대구읍성을 헐어 냈는데, 선교사들이 이 돌들을 옮겨와 집짓는 데에 활용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이은 박공지붕이었으나 함석으로 개조되었다 다시 한식기와로 보수했다.

창은 스텐드 글라스로 장식해 선교박물관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 한다. 스윗즈 여사를 비롯해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헨더슨(H.H.henderson), 계명대학교 초대학장인 캠벨(Archibad cambel)등의 선교사들이 거주했다.

이중 영남 지역 최초 처녀 순교자인 마르타 스윗즈(Miss Marttha Switzer 성 마르다:1880 ~1929)여사의 이름을 따 선교박물관을 ‘스윗즈 주택’이라 명명했다.

현재 1층에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영남 기독교의 역사, 동산의료원의 역사, 2층에는 성막 및 성서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의료박물관(선교사 챔니스 주택)

대구유형문화재 제25호인 의료박물관은 붉은 벽돌쌓기의 2층집으로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에 지어진 건축물로 미국인 선교사들의 주거양식과 생활양식을 잘 알 수 있다.

이 주택에는 1911년 계성학교 2대 교장인 레이너(Reiner)와 챔니스(Chamness), 샤워텔
(Sawtell)선교사 등에 이어 1948년부터 마펫(H.F Moffett, 마포화열)선교사가 거주했었다.

이 중 챔니스 선교사의 이름을 다 의료박물관을 ‘챔니스 주택’이라 이름지었다.

현재 1층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에 이르는 많은 동서양의 의료기기 등이 소장돼 의학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고, 2층은 선교사생활관으로 한국인을 위해 봉사하신 옛 선교사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다.

▷제7대 병원장 하워드 마펫 박사(Howard F. Moffett)

마펫 박사는 1948년부터 1993년 동산의료원을 떠나기까지 약 45년간을 한국의료의 성장과 선교를 위해 헌신한 의사 선교사다.

애락보건병원을 1964년 신축해 수많은 나병환자들에게 질병치유와 정신 계몽을 위해 봉사했으며, 병원을 찾는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또 병원을 신축, 확장하고 현대식 의료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과 서독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있는 많은 후원 단체들에게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모금운동을 위해 밤낮없이 편지를 쓰고 기도하며 동산의료원의 중흥을 위해 노력했던 마펫 박사의 서재와 침실이 의료박물관 2층에 그대로 남아있다. 1993년 미국으로 귀국했으나 아흔을 넘긴 현재도 2년에 한번 씩 와서 자신이 살던 집에서 묵곤 한다.

▲교육·역사박물관(선교사 블레어 주택)

대구유형문화재 제26호이며 블레어(Blair)목사가 살았던 마지막 셋째 집은 ‘블레어 주택’으로 교육·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교육. 역사박물관에는 다양한 민속사료와 조선시대 이후부터 1차~6차 고육과정까지 각 시대별 교육서적과 교과서, 서당, 1960년대 초등학교 교실을 볼 수 있는 교육·역사관과 대구 3.1운동의 발자취와 일제만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등이 전시돼 있는 3.1운동 역사관이 있다.

또 동산의료원에서 의무지원활동을 펼친 2002년 월드컵대회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남긴 기록들과 자료, 세계로 뻗어 나아가는 우리들의 젊은이들과 시민들의 모습을 모은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기념관이 있다.

월드컵기념관은 2002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지정병원으로 의무지원활동을 펼치면서 남긴 기록과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시민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했다.

▲제중원

대구를 제일 먼저 방문한 베어드(Williwam M. Baird, 배위량) 목사는 1896년 다시 대구로 이사 와서 현재 구 제일교회 자리에 초가집 5동과 기와집 1동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해 4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베어드가족은 곧 선교지를 옮기게 되고 베어드 목사의 손아래 처남인 아담스(Rev. James Edward Adams, 안의와) 목사가 1897년 부인 넬리딕(Nellie Dick)과 아들 에드워드(안두화, 계명기독대학창설자)와 함께 대구에 도착하여, 베어드 목사가 구입한 한옥에 정착하게 된다.

1898년 기와집 4동을 교회당으로 삼아 구 제일교회를 세웠다. 같은 해 1897년에 존슨(Woodbridge Johnson, 장인차) 의사가 대구에 도착했는데 그는 1899년에 같은 장소의 한옥 한 채에 서양 약방의 간판을 걸고 지역 최초의 의료기관인 제중원을 세웠다.

김승근기자 ks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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