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봉화 늘못은 어떤 곳일까
<대구논단> 봉화 늘못은 어떤 곳일까
  • 승인 2009.03.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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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대기자)

경북 봉화라고 하면 오지 중의 오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울진을 거쳐 강원도 태백과 맞닿아있고 동쪽으로는 안동과 연이어졌다. 남쪽과 서쪽은 영주, 풍기와 지호지간으로 같은 생활권에 들어있다고 말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봉화의 자랑거리는 단연 청량산이다.

큰 산이 아니면서도 자소봉, 탁필봉, 의상봉 등의 아름다운 경치는 모든 오르는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다. 요즘에는 산 정상근처에 `하늘다리’라는 이름을 붙인 멋들어진 구름다리 하나가 놓였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 계곡은 심장 약한 사람의 다리를 후둘 거리게 만들거나 오줌을 찔끔거리게 한다. 전남 영암에 있는 월출산 구름다리가 높기로 유명하고 전북 순창 강천산에도 작지만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는데 청량산에는 하늘다리라고 명명했으니 그 기세가 당당하다. 구름보다는 하늘이 더 높지 않겠는가.

산 중턱에는 고찰 청량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해마다 가을이면 전국 최초로 산사음악회가 열려 수천 명의 청중을 불러 모은다. 이 산사음악회를 개최하는 청량사 까지만 오르더라도 숨이 턱에 찰 만큼 높은 곳인데 전국에서 모여드는 청중들의 수준도 그만큼 높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은데 음악의 선율은 울긋불긋 물든 가을 단풍처럼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니 그 순간만은 천상에 오른 기분을 느끼는 모양이다. 청중들의 박수와 합창은 산사음악회를 클라이맥스로 끌어 올린다. 음악회가 끝나고 모든 청중들이 돌아간 다음 찾아온 정적은 산사를 한없이 고즈넉하게 만든다.

언제 그 많은 사람이 다녀갔느냐 하는 것처럼 여전히 스님은 목탁을 치고 경을 읊는다. 그 다음으로 외부 인사를 모은 것은 송이축제다. 봉화청정지역의 송이버섯은 전국적으로 가장 알아준다. 양도 많이 나거니와 질도 가장 좋다고 소문이 나있다.

송이버섯의 향기는 봉화를 빛나게 하는 특산물 중의 하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래프팅을 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 방울 소리가 전국에 널리 퍼져 나갔다. 단 1억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다는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봉화군 상운면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아버지의 일상(日常)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만든 이 영화는 흥행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제작자나 감독조차 이런 기적이 일어날 줄은 기대하지 못했는데 꾸역꾸역 밀려드는 관중 덕분에 입이 열자나 벌어졌다. 워낭소리를 찍은 현장을 찾는 호사가들 때문에 주역을 맡은 할아버지의 처지가 곤혹스럽게 되었다는 보도는 봉화군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비명일 수도 있다. 다만 당사자의 고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한다. 냄비처럼 후딱 뜨거워지고 얼른 식어버리는 한국사람 특유의 `몰림’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봉화에서는 이를 기화로 관광자원의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지만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끌어드린 영화촬영 세트나 드라마 세트들이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쓸쓸하게 남겨진 흉물로 변하고 있는 현상은 워낭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승마연습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생활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봉화군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더 밝은 빛을 비춰준다.

그리고 명호 관창리에 있는 관창폭포와 늘못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관창이란 이름은 원래 관청이었다. 봉화 금씨(琴氏)들이 개척한 마을 뒷동산에서 낙동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다가 많은 강물을 보고 관창(觀漲)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청량산 맞은편에 자리 잡은 만리산을 포용하고 있다. 산 입구 계곡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생각지도 않은 거대한 폭포가 맞이한다.

올라가는 길가에는 팔각정도 지어져 있어 쉬고 놀기에는 제격이나 크게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위력은 이름난 유명폭포를 뺨칠 만큼 장대하다. 귀를 가까이대지 않으면 고함을 질러도 옆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관창폭포라는 자그마한 나무 표지가 안내자 구실을 할 뿐이다.

`늘못’은 늘모실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만리산 중턱에 자리한 자연 연못이다. 백두산 천지처럼 넓고 큰 것은 아니지만 이 못에 물이 많이 고여 있으면 농사가 풍년이 들고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원래 이 지역은 아홉 마리의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되어 있어 구우전(九牛田), 구이밭, 구우밭 등으로 불리고 있다.

늘못을 제대로 가꾸거나 꾸며 놓기만 하면 근처에 산재한 사과 밭과도 연계한 생활 관광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인다. 청량산에 수없이 몰려드는 등산· 관광객들을 늘못으로 인도하여 만리산의 갈골로 트래킹 코스를 개척해도 훌륭하다. 늘못은 아이디어만 활용하면 인공이 섞이지 않은 명물이 될 수도 있다. 워낭소리가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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