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영화 `색계’와 괴뢰정권
<대구논단> 영화 `색계’와 괴뢰정권
  • 승인 2009.01.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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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 (대구대 교수)

영화 `색계’는 중일전쟁 중 왕정위 친일 괴뢰 정권의 첩보장관을 애국단체 회원이 성을 미끼로 암살하려 하지만 친일파 제거라는 대의명분이 성에 의해 흔들리는 미묘한 인간 내면을 그린 영화이다.

2007년 제작돼 과감한 누드 신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상당한 논란도 야기 시켰다. 노출이 지나치다는 논란과 함께 친일파 제거라는 애국적 사명감을 자신이 이용하고자 한 성, 바로 그것에 의해 그리 쉽게 훼손시킬 수 있느냐는 논란도 있었다.

통상의 구도대로라면 제거 대상인 친일파 첩보장관 역시 번민하고 연민하는 인간적 인물이어야 하고 그 인간적 면모는 그를 제거하려 하는 여자 주인공에게도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죽이려 한 남자를 살려내고 대신 자신을 포함한 동지들을 죽게 만드는 이유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설정을 거부한 채 마치 자신을 잡혀온 반일인사 다루듯이 성폭력 해버리고 사랑이 아니라 성에 탐닉하는 제거 대상을 살려내는 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애국주의의 입장이나 인간적 입장, 그 어느 쪽에서도 이해되기 어려운 결말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불확실성이나 인간 내면의 불확실성을 말하려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학자인 필자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통상적인 설정을 뛰어넘는 대립구도였다. 통상적 대립구도라면 국민당과 공산당이 그 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아니라 괴뢰정권과 애국단체를 대립구도로 설정했다.
애국단체가 국민당과 공산당, 어느 계열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유심히 보면 띄었겠지만 첩보 장관 서재에 일장기와 함께 손문 선생 사진이 걸린 것은 왕정위 괴뢰정권 역시 권력의 정통성을 그에게서 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실 문제의 애국단체는 국민당이나 공산당 그 어느 계열에도 속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당시 일반 민중, 특히 지식인 세계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국민당이나 공산당보다도, 일제의 꼭두각시인 친일 괴뢰정권이 더 원수였을 것이다.

국민당이나 공산당이나 다 동족일터이지만, 친일 괴뢰정권은 동족의 배신자였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본 한 후배가 영화의 배경인 친일 괴뢰정권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순간 역사학자가 아닌 한, 쉽게 이해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의 침략은 크게 침략 전쟁을 통한 직할 식민지 획득에서 괴뢰정권 수립을 통한 간접 식민지 획득 전략으로 선회했다.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식민지로 획득한 것이 침략전쟁을 통한 직할 식민지 획득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 희생양은 우리 조선이었다. 두 곳에는 직할을 위한 총독부가 설치됐다. 다음으로 노린 것은 만주였다. 만주에 대한 야욕을 억눌려 왔던 일제는 대공항의 어수선한 틈을 타 만주를 전격 점령해 버렸다.

이것이 이른바 1931년 9월 18일 발발된 만주사변이었다. 요즘과 같은 대공항으로 정신이 없었던 세계는 경악했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 토벌 작전이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는 시점에서 이 사건은 장개석으로 하여금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했다.

백성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이 아니라 합심해 만주의 일제를 몰아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개석은 일제의 만주 점령을 국제연맹에 제소하는 미온적 태도로 처리하고 공산당 토벌에 전념했다.

많은 백성들이 이로써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국제연맹과 열강의 철수 압력에 일제는 친일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속임수를 썼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만주국. 청나라 마지막 활제 부의를 황제로 만들어 일본이 아니라 만주인 스스로 세운 나라라고 우겼지만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괴뢰정권이었다.

영화 `색계’ 속의 왕정위 괴뢰정권은 중일전쟁 중 일제가 세운 또 하나의 친일 괴뢰정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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