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변화로 이끄는 생각의 힘
<팔공시론> 변화로 이끄는 생각의 힘
  • 승인 2009.03.29 16: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규성 (논설위원)

친구들은 나를 마음씨 착한 늑대라고 한다. 늘 앞장서지 못하고 뒤에서 고민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 탓이리라. 그러나 늑대는 늑대이다. 냉엄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어야 한다. 내가 늑대인 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동족들과 더불어 완전히 기피대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옛날부터 같은 늑대종족들 이외로부터는 별다른 호감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옛날에는 많은 동족들이 있었다. 깊은 숲속에서 큰 사슴을 다 같이 잡기도 했다. 물론 나는 뒤에서 따라가기만 했지만, 그래도 큰 사슴이 동료의 공격에 쿵하고 넘어질 때는 늑대로서 어쩐지 뿌듯한 느낌도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큰 사슴을 정면에서 공격한 동료는 동족들로부터 존경과 감탄의 눈길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우리는 늑대다.” “숲속의 왕자다.”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그리 강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냥에서 전면에 나서지도 못했고, 동족들로부터 존경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자긍심은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인 것을 부끄럽게 여긴 적은 거의 없었다.

당당한 동료들에게 둘러 싸여 나도 다음에는 큰 사냥감을 잡아보겠다고 혈기를 발산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동료들도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다. 지도자가 없어진 뒤로는 무리도 뿔뿔이 흩어졌고, 이따금 식이라도 만났던 옛 동료들조차도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그렇게 컸던 숲도 이제는 어느새 작아져 사슴 같은 큰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숲속의 작은 동물들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요즘 보이는 것은 두발로 걷는 기묘한 동물들과 그들이 숲을 베어내고 만든 풀밭에 나타난 얌전하고 털이 많은 양과 그들의 집 부근을 어슬렁대는 날지도 못하는 새와 멧돼지를 닮았지만 아주 토실토실하게 살찐 동물뿐이다.

이들은 사슴과 토끼에 비하면 모두 느림보여서 동족들 중에서도 겁이 많고 느렸던 나도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잡을 수 있다. 몇 번인가 사냥에 실패해 숲속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한 때, 그들을 습격한 이후로는 나를 완전히 멀리하고 경계하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요즘에는 나를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은 눈길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도 이해가 된다. 나에게 잡히면 먹혀버리니까 당연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나도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가 습격했을 때 보이는 그들의 겁먹은 얼굴도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함께 습격하여, 함께 사냥감을 나누며, 서로의 공을 칭찬해주는 동료들이 사라진 탓일 것이다. 아니면 주변에 모두 나를 싫어하는 동물들뿐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지도자로 보이는 두 발로 걷는 기묘한 동물은 어째서 저렇게 한심한 놈들하고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일까? 사이좋게 지내는 정도가 아니다. 몰래 보고 있으면, 놈들에게 먹이까지 주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런 놈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일까?

어차피 먹여 살릴 거면 저런 어설픈 놈들보다 내가 훨씬 나을 텐데. 어쩌면 두 발로 걷는 짐승은 어딘지 멍청하고 어설픈 놈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저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두 발 짐승과 사이가 좋아진 것일까? 처음부터 그랬을까, 두 발 짐승들이 놈들을 불러들인 것일까? 아니면 놈들 쪽에서 먼저 두 발 짐승에게 다가간 것일까?

이렇게 마음씨 착한 늑대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변화가 이루어졌다. 늑대는 최초의 개를 향한 진보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