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선거가 끝나서 좋다
<달구벌 아침>선거가 끝나서 좋다
  • 승인 2012.04.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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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철(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선거가 끝나서 좋다. 나는 무엇보다도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지겹다. 매일 같이 만나서 밥을 같은 먹는 사람들도 선거 기간 때만 되면 왠지 표정이 바뀐다. 선거 때가 되면 밥을 먹을 때도 온통 정치 이야기뿐이다. 모두가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눈치이지만, 그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여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는 분위기가 짜증스럽다. 새벽부터 스피커를 크게 틀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세차의 확성기 소리도 싫다. 매일 아침 내가 누리는 유일한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마치 점령군과 같은 그 막무가내의 폭력성에 나는 분노를 느낀다.

무엇보다도 나는 선거 때만 나타나서 동네를 돌며 고개를 조아리는 후보자의 뻔뻔스러움에 대해서 참을 수 없다. 선거가 끝난 후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호텔이지 동네가 아니다. 나는 국회의원을 호텔 커피숍에서 우연히 마주 친 적이 있다. 그 곁에는 까만 양복을 차려입고 마치 조폭처럼 수행원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선거 때에 텔레비전에서 본 모습과 호텔 커피숍에서 마치 조폭 두목의 포스를 취하고 있는 모습의 간극을 어떻게 이해할지 잠시 혼란에 빠졌다.

나는 이까짓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위해서 대화의 주제조차 강탈당하고, 고요한 아침의 적요를 빼앗기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선택권이 몰수되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 나는 전공이 전공인지라 지역발전을 위한 세미나나 워크숍에 참석할 기회를 비교적 많이 가진다. 그런데 나는 선거를 통해 뽑힌 국회의원이 이러한 세미나와 워크숍에 나타나 진지하게 메모하고 질문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가끔은 이러한 자리에 얼굴을 내밀지만, 인사말을 마치면 마치 대단히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듯, 시의원과 공무원과 각종 이해집단의 관계자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를 빠져나간다. 그들이 어딘가로 몰려가서 그 어떤 긴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시간이 아까운 듯 인사말만 하고 빠져나가는 그들에게 가끔 모욕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역은 삶의 터전이 아니다. 그들이 선거에서 이겨서 돌아갈 곳은 서울이다. 지역은 그들이 뿌리박고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선거가 벌어지는 전쟁터일 뿐이다. 지금 그들은 전쟁을 마치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있어 지역은 4년 후에 다시 전쟁을 벌어야할 지긋지긋한 장소로 각인되어 있을지 모른다. 전쟁터로서 지역을 대상화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애환은 한갓 허접한 하소연에 지나지 않을 터다.

그들은 지역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어떠한 지역 문제라 하더라도 모든 해답은 서울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살아서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챙기고 있는 당선자는 한 결 같이 지역발전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약속은 이제 곧 서울에 올라가서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서 내려가겠으니 개봉박두 기대해 달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고 보니 지역발전을 위한 비전과 실행 프로그램을 논의하는 지역의 토론의 자리에 그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알만하다. 해답은 서울에 있는 데 지역에서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들에게 보다 중요한 일은 지역에 안고 돌아 올 선물 보따리를 꾸리는 데 필요한 값싼 선물 나부랭이를 긁어모으는 일과 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생색내며 주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서 좋기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반드시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이제 곧 그들이 두 손에 가득 싸들고 돌아 올, 지난 세기에 유행하여 이미 오래 전에 한물 간, 유치찬란한 선물 보따리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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