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민간’ 자본 유치와 전문가 활용의 이중성
<달구벌 아침>`민간’ 자본 유치와 전문가 활용의 이중성
  • 승인 2012.05.0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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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민간사업자의 서울시 지하철 9호선 요금 기습 인상논란을 계기로 민자 유치사업의 왜곡된 구조가 초래한 사회적 비용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민간자본의 횡포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한 무능한 공무원들을 보면서 분노하고 있다. 민간사업자가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현행 민자 사업 구조는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의 고속도로, 경전철, 항만사업에서 강요되어 국민들의 피와 같은 세금이 민간사업자들로 고스란히 넘어가고 있다.

민자 유치사업의 주된 취지는 기반시설 확충에 필요한 공공재원을 보충하고 설계나 건설, 운영 과정에서 민간부문의 창의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 정부재원으로 충당하지 못한 엄청난 공공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 민자 유치제도가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에서 민간 사업자에 대한 권력자의 특혜부여와 공무원들의 동조에 초점을 맞추면서 최근 민자 유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완전히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렇지만 정작 민자 유치제도에서 본질적인 문제인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시스템의 부실은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자본은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입천장을 다치게 하는 뜨거운 감자이다. 입김을 불어내면서 감자를 먹어야 제 맛이듯이 민간자본은 충분히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 민간사업자들은 민자 유치사업의 추진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비용으로 평가해서 최소화하고, 수입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를 요구해 왔으며 이를 제도화하였다. 9호선 민자 유치사업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높은 할인율과 최소운영수익 보장(MRG), 부가가치세 면제 등의 특례가 그 사례이다.

민간사업자들은 전 세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설득하고 협상하는 전략과 경험을 갖고 있으며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민간사업자들은 협상전문 인력으로 금융, 회계, 법률 등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프로젝트별로 수억 원을 지불하고 고용한다. 순환보직에 따라 우연히 도시철도나 고속도로, 경전철 민자 유치 업무를 맡게 된 담당 공무원이 이들을 대상으로 대등한 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공공부문은 전문가 활용에 관한 보수규정 때문에 최고의 전문가들을 동원하기도 어렵다. 건당 수만 원의 자문비만 받고 애국심으로만 무장된 공공부문의 자문가 그룹으로는 민간부문에 비해 제대로 된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

공공부문의 전문가 활용시스템의 문제는 비단 민자 유치사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미 FTA와 같은 국가 간 협상에서 협정문에 수백 군데의 영문번역 오류가 나타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한 평가나 심사에서 전문가의 평가결과가 수용되지 못하는 구조도 잘못된 전문가 활용시스템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몇 해 전 정부가 전문연구기관과 전문가를 위촉하여 동남권 신공항 입지타당성 조사결과를 발표하였지만 대구경북권이나 부산울산경남권 주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문가의 분석결과가 신뢰성을 잃으면 모든 정책결정은 정치행위를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왜 전문가의 분석 결과를 신뢰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을까? 공공부문이 전문가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결과이다. 공공부문에서 운영하는 각종 자문위원회와 평가위원회의 전문가들은 위촉과 임기연장이 공무원에 달려있기 때문에 의사표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성도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한 공공부문에 참여하는 전문가는 공공부문의 정책을 합리화하고 지원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하게 된다.

한 때 전문성과 가치중립성을 지닌 관료나 전문가가 마련한 정책이나 계획은 사회전체의 합리적인 이성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에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관료나 전문가는 없다. 다양한 주민참여와 정보의 공개를 통해 이들의 결정을 감시해야 한다. 또한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민주적 엘리트가 충원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정책결정자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공익과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섣부른 민자 유치와 동원된 전문가는 지금 나타난 민자 유치사업의 부실보다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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