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어여삐 여기는 마음
<달구벌 아침>어여삐 여기는 마음
  • 승인 2012.05.0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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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대성에너지(구. 대구도시가스) 사장

몇 년 전 방영되었던 인기 드라마 허준의 한 장면이다. 명의 유의태에게는 자기 아들인 유도지와 허준의 두 제자가 있었다. 유도지는 아버지로부터 타고난 의술의 재능을 물려받아 실력은 누구 못지않았으나, 자기중심적이고 출세지향적인 성품으로 남에 대한 배려는 적은 인물이었다. 반면 허준은 외지에서 굴러들어온 뜨내기였으나 항상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가슴에 품고 환자를 대하는 의원이었다.

허준과 유도지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충청도 진천에서 불쌍한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허준은 매달리는 백성들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병을 돌보다가 과거 시험장에도 못 들어가게 된 반면 자기 갈 길을 재촉한 유도지는 합격한다. 아들의 합격소식에 반가워하던 유의태가 자초지종을 듣고 아들을 꾸짖는 장면이다.

“그래 한쪽에서는 오던 길도 되돌아가 환자를 보살피는데 내 자식이 환자를 뒷전에 두고 한양 갈 길만 재촉해?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환자를 외면하고 따낸 그 합격증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아무리 내의원 의원이 되었다 해도 인간적인 품성이 그렇게 다르니 너는 끝내 허준이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허준이 동양최고의 명의가 된 데에는 열심히 공부한 노력의 밑바탕에 환자를 진실로 불쌍히 여기는 이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상살이가 각박하다. 주위에 허준이 살던 시대와는 또 다른 형태로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우리 모두는 자기 갈 길이 너무 바쁘다. 내미는 손을 야멸치게 뿌리친다. 네 사정도 딱하기는 하지만 내 형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터에 쓰러진 사람을 돌볼 겨를이 어디 있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경제적 양극화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로만 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내 주머니에는 돈이 없다. 내 친구는 졸업 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자영업을 하는 옆집 아저씨는 인건비도 못 건진다고 울상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언니는 언제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몰라 항시 불안하다.

경제적 양극화는 더 나아가 사회적 양극화로까지 진행된다. 경제력의 차이가 교육정도와 직장선택에까지 이어져 사회적 신분의 고착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개천에서도 가끔 용이 나던 시절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태어날 때 이미 자기 운명의 십중팔구가 결정되어버리는 사회가 된 것이다.

현실이 어려워도 희망만 있으면 사람들은 참고 견딘다. 그러나 희망이 없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분노하게 되고 극단적 선택도 서슴지 않게 된다. 경제 사회적 양극화 문제는 우리 경제의 장기 안정적 성장과 사회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문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쉬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관을 바꾼다고 심지어 정부를 바꾼다고 명쾌한 해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비를 맞을 때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주면 고맙다. 그러나 더 고마운 사람은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따뜻한 가슴으로 상대를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좋은 해법이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구체적인 집행력도 생기기 어렵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 세상을 앞서 이끌어가고 사람의 가슴에 사랑의 마음이 먼저 터를 잡아야하는 이유이다.

바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의 심정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서문에 “글자가 없어 자기생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통 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음운학을 공부하고 입모양을 연구했다 하더라도 한글은 창제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개국 초 삼봉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이 된 `조선경국전’에서 “오직 백성을 진실로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만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일선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 관리들은 “천지가 만물을 만들고 키워내는 마음씨를 자기 마음으로 삼아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씨’로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비록 그 해결이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는 진실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취업 못한 대학졸업생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장님이, 재래시장의 중소영세상인이,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옛날에 다니던 직장보다 훨씬 대우가 열악한 새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은퇴자가 내 부모요 형제자매라는 인식이 있을 때에만 고통을 함께 나누며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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