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극장의 새로운 봉사 역할
<달구벌 아침>극장의 새로운 봉사 역할
  • 승인 2012.05.1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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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묵(수성아트피아 관장)

극장의 경영을 맡으면서 제일 처음 직면한 딜레마가 있었다. 그건 수준 높은 공연은 비싸다는 것이었다. 비싼 공연은 제작과 초청에도 많은 돈이 들지만, 관람료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수준 높은 공연일수록 일반 서민과 멀어지게 된다. 즉 수준 높은 공연일수록 일반 서민들과 멀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구의 경우, 비싼 관람료라 함은 대체로 일인당 칠 만원에서 십오만 원정도로 책정된다. 사실 그 이상의 관람료가 소요되는 작품은 대구 현실상 공연되기 어렵다. 그래서 조금 비싸다는 공연을 두 명이 관람하게 되면, 교통비와 식사비를 포함하여 약 이삼십 만원의 예산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이삼십만 원,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일반 서민은 물론, 웬만한 중산층과 감당하기 쉽지 않다. 남에게 자랑할 만한 물적 증거물이 남는 것도 아니요, 투자에 따른 부가 가치가 별도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그런 공연 한 편을 봤다는 기억만 남을 뿐인데 말이다. 더구나 때에 따라서는 그 공연에 왜 그렇게 비싼지, 또 왜 좋다고 말하는지 모를 때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그 공연을 꼭 보고 싶고, 봐야 하는 사람이 금액이 부담되어 보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안 봐도 되는 사람이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보는 경우도 많고, 또 심한 경우에는 보고 싶지도 않은데, 남들이 하도 좋다고 하니까, 자신의 신분상의 힘을 이용하여 초대권을 억지로 받아내어 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자기가 직접 보기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표를 다시 나눠주어 자기를 과시할 때가 더욱 많다.) 그런 상황에서, 예술을 전공하거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그 옛날, 고대 그리스 시대 아테네에는 매월 봄 디오니소스축제가 열렸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또 이를 기리는 합창대회가 열렸는데, 이 합창대회가 점차 발전하여 연극이 되었고, 이것이 바로 서구 공연예술의 원형이 되었다. 서양에서 고전이라고 함은 바로 이 시대 연극,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의한 비극에 관한 모든 원칙 혹은 규범이 그 기준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연극이 개최되었을 때,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아테네의 시민 혹은 귀족만이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은 물론 여자와 외국인, 그리고 노예들도 참가하여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연극을 관람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사전에 지급하여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얼마든지 있다. 즉 공연을 통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계층 간의 화합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재원은 주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는 계층이 전담했다. 결코 일부 몇 사람만 즐기고 나누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옛날만큼 공연이 귀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공연, 즉 수준 높은 좋은 공연을 통해 모든 계층이 화합하고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오늘날 대다수 공연이 공공의 재원으로 건립된 공연장에서 공연된다는 것을 비추어 봐서도 특정 계층만 누려서는 안 된다.

왜 국민의 많은 세금으로 지어진 건물을 이용한 공연물을 특정 계층만 즐긴단 말인가? 만약 관람료 때문만 이라면 이것은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그 옛날 지배계층이 일반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거나 관람료를 제공했던 것처럼.

최근 수성아트피아는 `아르떼 아모르(Arte Amor : 예술사랑)’라는 특별 할인 좌석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는 수성아트피아가 기획하는 수준 높고 비싼 공연의 일부 객석을 시민들에게 무조건 일 층 일만 원, 이 층 오천 원에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기존에 오만 원 내지 칠만 원에 해당하는 좌석을 일만 원에 제공하는 것이고, 기존 삼만 원 정도에 제공하던 좌석을 오천 원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꼭 보고 싶었으나, 비싼 관람료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던 예술 매니아 혹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수성아트피아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제도를 통하여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시민이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서로 만나고 즐기며, 또 미래의 예술 지도자로 자랄 수 있는 학생들에게 예술적 자양분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극장은 봉사해야 한다. 단지 서비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계층이 화합하여 더 좋은 미래로 갈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 - 마치 그리스 시대 야외극장처럼 - 그런 역할이 진정한 봉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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