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로망을 찾아서
<달구벌 아침>로망을 찾아서
  • 승인 2012.05.27 14: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외국 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씬 하나. 저녁 어스름, 일을 마친 사람들이 동네 어귀에 있는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은 모두 옛 친구처럼 서로에게 손짓하며 인사를 나누고는 조용한 저녁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다. 나는 가끔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순전히 영화에서 본 이러한 풍경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초여름의 거리는 언제나 슬프게도 아름답다. 가로수의 녹음은 그 곳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의 깊이만큼 아득하고 멀다. 거리의 카페에는 나이가 든 은백의 노부부가 지긋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한쪽 편에는 젊은이 몇 명이 활기차게 웃고 떠들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문법으로 언어를 구사하면서 세상을 제 맘대로 조롱하고 있지만 어쩌다가 노부부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마음으로부터의 존경심을 드러내며 미소를 보낸다. 노부부는 이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관용을 애써 숨기지 않으며 눈을 찡긋하며 답한다.

눈을 돌리면 중년의 남자가 헐렁한 반바지 차림으로 혼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신문을 읽고 있다. 때마침 산 너머 붉은 노을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그의 발밑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는 나의 오랜 로망이다. 나도 그처럼 멋있게 세월을 이기며 살고 싶다.

지금 동성로에 나가 보라. 세월을 가득 품고 있는 도심의 가로수는 절정의 기품을 뽐내고 있다. 길가에는 반듯반듯 멋들어진 카페가 서로 개성을 자랑한다. 영화 속 도심의 풍경을 재현한 듯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얼마 전 나는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성로를 일부러 찾았다.

길모퉁이 카페를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테라스에 나와 석양이 지는 붉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물론 혼자였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켜고 뉴스를 검색하였다. 나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디서 불현듯 불어오는 사막의 건조한 바람.

도심의 풍경과 카페의 인테리어는 영화 속 풍경이 무색한 듯 다가왔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낯설고 불편했다. 주위에 따로따로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젊은이들은 나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젊은이들과 나 사이에는 유리 칸막이가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눈빛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카페 내의 공간을 공유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공간은 건조한 사막이나 다름없는 법. 바람이 불었다면 그 곳 사막에서 일었으리라.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 복원이 화두가 되고 있다. 공동체는 특정 장소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는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공간을 공유할 때 그곳은 공동체가 될 수 있으나,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사막이 놓여 있으면 그곳은 공동체라 할 수 없다. 공동체는 호혜성과 연대의식을 본질적인 요건으로 한다.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협동조합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도시 농업 혹은 로컬 푸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줄여서 결국은 사람이 중심에 서고,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사람에 관한 일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추진할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공동체 복원 사업은 사람이 빠지고 시장에서의 경쟁의 논리와 돈이 지배하는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 같다.

공동체 복원 사업은 70년대의 새마을 운동도 아니고 4대강 사업과 같은 토건 사업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 사람의 논리를 관철시켜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 도심의 속살에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곳에 나의 로망이 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