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왜 태종이 없냐?
<달구벌 아침>왜 태종이 없냐?
  • 승인 2012.06.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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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대성에너지 사장

참으로 한 인물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같은 수양대군을 다룬 소설이지만 이광수의 단종애사에서의 수양은 조카의 왕위를 뺏은 나쁜 삼촌이지만, 김종인이 쓴 대수양에서는 종실과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는 충신이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만큼 그 평가가 상반되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이방원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요, 세종의 아버지이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 조선건국의 1등 공신 자리를 차지하였다. 건국초기 자칫 혼란해지기 쉬운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웠다.

중앙과 지방의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토지와 조세제도를 완비하여 국가 재정을 안정시켰다. 백성을 사랑한 왕이기도 하다. 그가 죽던 해 가뭄이 극심하였는데 그는 “내가 죽으면 하늘에 올라가 비를 내리겠다”고 했다. 그 후 그의 기일마다 내리는 비를 우리는 태종의 마음을 기려 태종우라 한다.

태종은 내치뿐만이 아니라 대외관계의 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역사에는 대마도 정벌이 세종의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때 실제 병권은 상왕이었던 태종이 쥐고 있었고 대마도 정벌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겨 왜구의 근심을 제거한 것도 태종이었다.

그러나 그는 집권과정에서 2번에 걸친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아버지를 버리고 형제들을 죽였으며 수많은 공신들의 목을 베었다. 공신들이 왕권에 대들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유배길에 내몰았다. 집권과정에서 쿠데타를 함께했던 동료였지만 집권후에는 이들 세력들이 공신임을 이유로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권력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측근이라는 세력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재임기간 내내 스스로를 단속하고 제도적 정치를 강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임금이었다.

왕권강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자 처남 4형제와 사돈이자 세종의 장인에게까지 사약을 내려 세종이 왕이 된 후 외척세력에 시달릴 수도 있는 근심을 미리 없애 주었다. 어디 보통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훗날 세종이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민생안정과 문화사업 그리고 북방영토개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태종으로부터 물려받은 권력안정, 재정안정, 변방안정의 성과에 힘입은바 컸다. 왕위를 물려주면서 태종은 세종에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욕은 다 내가 들을 터이니, 주상은 오직 성군이 되시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세종이 되고 싶어 한다. 태종이 되기 싫어한다. 열매를 챙기기는 좋아하지만 그 열매를 위해 땀을 흘리거나 희생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줬으면 한다. 그러나 태종이 없었다면 우리가 우러러 보는 세종도, 한글도 없었을지 모른다. 비록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옳은 일이라면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라면 몸을 던지는 사람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법이다.

이러한 논리는 개인이나 조직을 넘어서 세대 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후진국 사람들은 우리는 죽을 고생을 해도 못사는데 선진국은 무슨 복이 저리 많아 소득수준이 높을까? 라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 부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앞선 세대의 피땀 어린 희생이 있었기에 후세대들이 그 과실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 세대도 더 나은 내일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 시대의 태종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번영의 뒤에도 당연히 앞선 세대의 희생이 있었다. 50-60년대 구로공단 봉제공장으로, 월남의 전쟁터로, 독일의 광부·간호원으로 그리고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 자기 몸을 던진 오빠, 누나들이 자신의 미래만을 위해 그 길을 택했겠는가?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다음 세대에게는 먹고 살만한 터전을 만들어 주자고 나선 행동이 아니겠는가?

필자의 세대에서는 자기의 의지만 있다면 적어도 직장을 잡는 문제로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런 얘기는 마치 옛날 동화속의 얘기처럼 들리고 있다. 실업과 이에 따른 양극화의 문제는 이제는 경제문제를 넘어 사회문제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일도, 양극화 해소와 복지증진을 위해 기성세대가 자기 몫을 양보하는 일도,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진 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모두 어른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한 태종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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