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각자도생의 역설
<달구벌 아침>각자도생의 역설
  • 승인 2012.06.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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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멘붕이라는 것이 있다. 멘탈 붕괴의 준말이라고 하던가. 무엇인가 일이 풀리지 않아서 크게 낙담하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인 듯. 일이 꼬일 대로 꼬이면, 사람들은 에라! 모르겠다. 니들은 잘해봐라. 나는 내 길을 간다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뿌리치고 어디엔가 비밀스러운 곳에 숨어든다. 멘붕의 상태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세는 이렇듯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허풍스럽게 크게 한번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그럴싸한 자기변명을 주저리주저리 머릿속에 떠올리며 사람들의 무리에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멘붕의 상태가 집단 전체에서 일어나면 그 증세는 보다 심각해진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모두가 각자도생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을 하고 무리에서 떠나고 마음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게 된다. 그러다가 기회가 닿으면 끼리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이제는 공개적으로 상대를 겨냥하여 싸움을 거는 일을 마다않는다.

이런 상황을 학술적으로는 공동체 실패(community failure)라고 하고, 저자거리의 용어로는 `콩가루’라고 한다. 본디 단단한 콩알맹이가 부스러지면 마치 먼지처럼 약간의 바람이 불어도 흩어지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사용된다. 더욱 나쁜 상황은 여기저기서 수분을 흡수한 콩가루가 제멋대로 조그마하게 덩어리를 만들어 제각기 따로따로 흩어져 마구 뒹굴며 뒤죽박죽의 상태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각자도생은 이제 더 이상 서로 도우며 살길이 없으니 이제 각자가 제 갈 길을 찾아 헤어질 때나 사용하는 말이다. 전장에서 궁지에 몰린 패잔병 무리에게 장수가 눈물을 머금고 해산을 명령하면서,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부대의 해체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각오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혼자서 외롭게 악다구니 쓰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점점 소외되고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면, 다른 것도 아닌, 경제학이 이러한 각자도생의 방식을 설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 같다. 경제학 교과서는 개인이 각자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사회 전체가 최적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내몰리고 있는 데에는 경제학이 제공한 밑그림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경제학은 사람이 더불어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사회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김훈은 문학은 과학적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문학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경제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문학보다도 훨씬 비과학적이다.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유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에 경제학에서 새로운 분야로 관심을 끄는 진화경제학은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공동체는 집단 내부에서의 협동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각자도생의 길을 사람들에게 장려하는 것은 패잔 부대의 마지막 선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역 사회가 튼튼한 물적 기반을 내생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에서 협동의 정신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협동을 말하고 공동체의 의미를 강조하면 사람들은 내 혼자 살아남기도 바쁜 세상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낭만적 언설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는 우리는 전쟁터에서는 물론, 사람이 사는 곳 어디에서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또한 이는 최근에 낭만적인 과학(그렇게 불러도 좋으리라)이 도달한 중요한 결론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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