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내가슴부터 열자
<달구벌 아침> 내가슴부터 열자
  • 승인 2012.07.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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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대성에너지 경영지원담당 사장

한반도의 동남쪽 변방에 치우쳐 있던 신라가 어떻게 고구려와 백제를 꺾고 삼국을 통일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역사에서 자주 제기되는 의문 중의 하나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까지는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신라가 닫힌사회에서 개방과 경쟁을 수용하는 열린사회로 바뀐데 서 찾을 수 있다.

강제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 김춘추와 소외받는 가야계였던 김유신 등이 출신성분보다는 능력이 더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랑들의 활동에서 보듯이 능력 경쟁을 통해 조성된 진취적이고 대외지향적인 사회분위기가 삼국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신라가 통일이후 골품제에 의한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하고 6두품을 비롯한 일반백성을 능력에 따라 활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나아가 백제나 고구려의 유민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포용정책을 실시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통일 후 신라 귀족들은 성골, 진골-6두품-5.4두품-서라벌 백성-일반 신라백성-고구려 백제유민으로 신분을 줄 세우고 귀족 내부에서도 혈통에 따라 권력투쟁에 몰입함으로서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다.

당나라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던 최치원은 당에서 습득한 선진제도와 행정능력을 신라를 위해 사용하고자 귀국했으나, 6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귀족들의 견제 속에 지방관으로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쇠락과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국민의 능력을 100% 활용해도 국가가 발전할지 말지 할 형편에 사대부와 평민으로, 사대부 중에서도 문관과 무관으로, 친자와 서자로, 자기 당파에 속한 사람으로, 결국에는 몇몇 세도가의 문중에 속한 사람들만으로 나라를 경영했으니 어이 국운융성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개방과 융합이 전체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원리는 비단 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는 사회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출신지역의 사람들이, 상이한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생각을 교환하고, 논쟁하고, 합의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역동성과 경쟁력이 자라게 된다.

개방과 다양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동종끼리의 모임에서는 변화와 혁신이 어려운 까닭이다. 이질적인 외부 요소가 들어와 건전한 자극을 제공해야만 기존 체제가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대외정책 중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피그만 사건이 실패한 이유는 작전계획 수립에 참가한 사람이 모두 케네디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반대의견이 개진될 소지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 라는 집단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금 대구의 공기를 누르고 있는 기운이 혹 이런 것은 아닐까?

대구가 바깥 세상에 대해 배타적이고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는 비난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외지인이 대구에서 사업하기 어렵다거나 대구지사로 발령받으면 한숨을 쉰다는 얘기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대구에서 생활하는 타향 출신이나 외국인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한다.
일찍 터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숫자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결국 기존체제 속에 녹아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지인 비율이 높은 울산, 구미, 포항의 분위기와 대구의 공기를 비교해 보면 쉬 알 수 있다.

“누가 모르나? 그러나 산업이 있어야 외지인이 먹거리를 찾아서 올 것 아닌가” 라고 말한다. 산업이 있으니까 직장을 찾아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다보면 문화도 변하여 가속도가 붇게 된다는 것은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대규모로 산업을 유치해주던 시대가 아니다. 새로운 먹거리 산업의 형성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외지인을 유인할 수 있는 신산업과 사회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마음가짐이다. 내 지방, 내 동문 아닌 사람들을 고향사람처럼 가슴에 안고 가지 못한다면 통일 후 신라귀족들이나 조선말 권문세가의 몰락 전철을 밟기 십상이다. 대구에 가니 대구사람들이 마치 고향사람 만난 듯 따뜻이 대해주더라는 입소문이 관건이다. 대구의 여름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이 우리에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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