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김여사’를 반대한다.
<달구벌 아침> `김여사’를 반대한다.
  • 승인 2012.07.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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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언제부터 `김여사’가 막장 운전의 장본인으로 대중들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김여사’가 실존하는 인물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김여사’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운전에 미숙한 여성 일반을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좌회전 김여사’, `현금수송차량 김여사’, `운동장 김여사’ 등 이제 `김여사’는 개념 없는 여성 운전자의 대명사로 확고히 고착된 상황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김여사’란 표현은 경위와 상관없이 운전에 서툰 여성 일반을 폄하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차별적 수사학이 분명하다. 개념 없는 운전자가 여성만은 아닐 텐데 이렇게 `김여사’란 표현이 고착되고 확산되는 걸 보면 이제 이 표현은 대중들의 언어장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런데 표현만 달리했지 최근 들어 김여사류의, 그러니까 여성을 개념 결여의 대상으로 확산시키는 ㅇㅇ녀의 수사학이 끊이지 않아 걱정스럽다. `버스 무릎녀’, `담배녀’, `욕설녀’, `된장국물녀’, `분당선 대변녀’ 등 인터넷 매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소위 개념 없는 여성들의 사례를 채집, 소개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바치고 있다.

이와 같은 ㅇㅇ녀의 수사학은 자연스럽게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유포하거니와, 더욱 가관인 건 이 ㅇㅇ녀들을 둘러싼 진위 논쟁이다. 폄하와 혐오의 대상으로 유포된 이 ㅇㅇ녀들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진위 논쟁의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아예 구제 불능의 인간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이 ㅇㅇ녀 수사학의 여성들은 개념 결여의 표상에 머물지 않고 진위 논쟁의 대상으로까지 전이되고 있으니, 이 수사학은 인신공격의 근거로 활용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ㅇㅇ녀의 수사학은 여성을 개념 결여의 대상으로만 유포하지는 않는다. ㅇㅇ녀의 수사학이 노리는 또 하나의 지점은 마초의 욕망일 수 있으니 `홍대녀’, `압구정녀’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홍대녀’, `압구정녀’의 수사학은 주로 거대도시 서울 출신 젊은 여성들의 몸을 소재로 삼고 있거니와, 오늘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또 다른 `홍대녀’와 `압구정녀’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

김여사류’의 수사학이 여성을 개념 결여의 대상으로 유포한다면 `홍대녀류’의 수사학은 여성을 욕망의 몸을 소유한 인간으로 유포한다고 하겠다. 요컨대 ㅇㅇ녀 수사학은 여성을 폄하와 혐오, 욕망의 개념과 접맥시키는 전형적인 여성 차별의 수사학에 해당한다고 하겠는데, 문제는 이와 같은 수사학의 확산이다.

그런데 ㅇㅇ녀의 수사학으로 재현되는 여성은 사실 실제의 여성이 아닐 수 있다. 이 여성들은 여성을 혐오와 관능의 이미지로 묶어두거나 혹은 극단의 이미지로 육화된 여성을 상상하고 싶은 남성들의 분열증적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간일 수 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여성이 등장할 만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예전과 달리 향상된 게 사실이고 또한 각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여성이 늘어난 것 역시 사실일 게다.

그렇지만 그와는 별개로 오늘날 한국의 여성들은 ㅇㅇ녀의 수사학이 증명하듯, 이 사회 에서 결여와 과잉을 오락가락하는 불안한 주체의 지위를 점유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구축한 주류 질서를 전복하거나 새롭게 하는 경쟁자이거나 동반자로 자신의 지위를 힘들게 격상시켜 왔지만, 그녀들을 포함해 한국의 여성들은 언제든 개념 결여의 인간이나 욕망의 유혹녀로 내몰릴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공적/사적 영역에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는 주체로 존재하기보다는 익명의 남성 대중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의돼버리는 소수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게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솔직해지자. 이 ㅇㅇ녀 수사학의 여성을 단죄하고 욕망하는 이 누구인가? 내일은 어떤 `녀’가 탄생할 것이며 그 누가 어떤 `녀’를 단죄하고 그 누가 어떤 `녀’ 앞에서 관음의 욕망을 드러낼 것인가? `김여사’를 반대한다. 김여사 수사학의 본질은 농담이 아니다. 그 본질은 차별이며 배제이자 욕망이며 폭력이다. `김여사’를 그저 `김여사’로 허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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