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죽고 싶은 또라이는 또라이만이 잡을 수 있다?
<대구논단> 죽고 싶은 또라이는 또라이만이 잡을 수 있다?
  • 승인 2009.04.0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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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2009년 4월 5일 오전 11시 30분 11초, 북한은 로켓2단계추진체(대포동2호)를 드디어 발사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또는 로켓(인공위성) 발사 카운트다운으로 한반도 주변에 또 다시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다. 북한은 로켓발사를 위협으로, 한미동맹관계를 이간질했고, 일본을 광분하게 만들었으며, 중국을 고민하게 했고, 러시아를 어정쩡하게 만들었다.

북한이 로켓 발사의 거사를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선 국내적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선전선동에 주력하는 동안, 이제 막 불을 지피기 시작한 한국경제에도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어쨌든 이번 북한로켓사태는 세계가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벌어진 악재임에 분명하다.

한국영화 `넘버3’ 장면 중에 주인공 송강호가 부하 세 명과 불사파를 만들고 지옥훈련을 마친 다음, 많은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결전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부하들에게 또라이 정신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 들어가기 전에 끝으로 한 마디만 하겠다. 최영의(최배달)라는 분이 있다. 전 세계를 구름처럼 떠다니면서 맞장을 뜨신 분이다. 그 양반이 황소 뿔도 여러 개 작살내셨다. 이런 식이다. `너 소냐?’ `나 최영의다.’ 그러곤 소뿔을 딱 잡고 가라대로 X나게 내려치는 거야. 소뿔이 부러질 때까지. 사람하고 붙을 때도 그런 식이다.

`너 존슨이냐?’ `나 최영의다.’ 무조건 걸어가는 거야. 존슨이 겁나니까 팔로 막거든. 그럼 `X새끼야, 팔은 네 살 아니냐?’ 하면서 또 X나게 내려치는 거야. 팔을 치울 때까지. 그런 무대뽀 정신. 그게 필요해.”

인간이 손으로 소뿔을 부러뜨릴 가능성보다 소뿔에 받혀서 중상을 입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이런 무대뽀 정신은 일명 `벼랑 끝 전술’ 또는 또라이 정신이라 불린다. 이 또라이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나를 완전히 또라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자. 작년 8월 뇌 순환 계통의 질병으로 수술을 받은 뒤 초췌한 모습으로 언론에 등장하지만, 인상, 헤어스타일, 안경, 옷맵시, 걸음걸이, 말씨 등이 평범하지 않다. 아웅산 폭발사건(1983)이나 대한항공 858기 폭발사건(1987) 그리고 일본인 강제납치 입북사건, 서해교전(2002) 등은 그 동안 심심하면 동해와 서해로 쏘아 올린 북한의 미사일시험발사와 더불어 종잡을 수 없이 거친 김정일의 또라이 타입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또라이 전술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도발적 행위로 상대방에게 자신이 또라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나서 상대방과는 직접적으로 부딪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상대가 미국이라면, 때론 판문점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장교 두 명을 도끼로 죽인 8·18 도끼만행사건(1976)과 같은 도발행위가 있긴 했지만, 결국 북한의 행패가 돌아오는 곳은 남한과 일본이 되고 만다. 비행기를 폭파하거나 사람을 납치하거나 하면서 엉뚱한 한국과 일본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또라이인 척하거나 실재 또라이인 상대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게임이론에서 결국 또라이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또라이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만약 김정일이 미국과 또라이 전술로 붙어보려고 한다면, 여차하면 미국과 목숨을 건 일전을 불사한다고 각오하고 시작해야 한다.

최악의 사태까지 갈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또라이 전술을 구사한다면 막상 전면전의 위험이 닥쳤을 때 마음이 약해져 결국 굴복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애 시작 아니 한만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또라이 전술에는 비극의 씨앗이 존재한다. 남과 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포용하고 통일해야 할 동포로서의 북한과 경계하고 적대해야 할 적으로서의 북한의 이중적 성격이 그것이다.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과 북한의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미사일 위협의 와중에서, 김정일이 그렇게 호전적이었던 조지 W. 부시와의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남북한관계와 한미동맹이 서로 얽혀 상호 억제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무모함과 무대뽀를 기반으로 하는 또라이 전술에서 또라이가 아니면서 또라이인 척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북한이 어느 정도 스스로를 또라이로 개조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북한의 로켓발사 도발은 게임이론에서 볼 때, 누군가는 또 다른 또라이로 만들어야 하는 서글픈 결론만 이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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