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자살을 예방하지 못하는 자살예방교육,
<달구벌 아침>자살을 예방하지 못하는 자살예방교육,
  • 승인 2012.07.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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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식 한국선비문화수련원 전임연구원 철학박사

최근 자살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연간 1만5천명 이상이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 하루 평균 41명꼴로 OECD국가 중 단연 1위이다. 경찰청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미수에 그치는 경우를 포함한다면 그 숫자가 몇 배 늘어날지 알 수 없다. 대개 자살의 원인은 독거노인의 자살, 생계비관형 자살, 청소년 성적비관형 자살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한 자살과 우울증 등과 같은 개인적 요인에 의한 자살로 분류된다.

하지만 자살은 그 원인이 어떠하든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예측과 예방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부나 교육당국에서 자살예방교육을 실시하지만, 매년 그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자살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국민의식과 매년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형식적 자살예방교육을 주된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인간은 삶에 대한 본능(eros)과 죽음에 대한 본능(tanatos)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자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죽음에 대한 본능이 갑자기 삶에 대한 본능을 잠식하여 생기 활발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본능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개 죽음에 대한 본능은 자신과 타인의 관계가 왜곡됨으로써 나타난다. 저명한 실존철학자 샤르트르(Jean-Paul Sartre)는 “타인의 시선은 나를 구속하는 감옥”이라고 했다. 우리는 간혹 대중 앞에 나서거나 창피를 당할 때 심리상태가 갑자기 불안해지고 행동도 부자연스러워지는 울렁증을 느낀다. 그래서 평소에 잘하던 말도 대중을 의식하는 바로 그 순간 말을 더듬거나 얼굴이 붉어지게 된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부정적으로 보여 진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말하자면,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이 전제되어야만 발생하는 감정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수치심도 느낄 수 없다. 예를 들어, 기말고사를 망쳤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친구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 선생님과 부모님의 실망에 찬 시선을 의식하면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광적인 결벽증을 가지고 있어서 작은 일에도 극도의 수치심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수치심은 지독한 고통을 수반한다. 이렇게 부끄러운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자살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만약 그 힘든 고통의 순간, 자살자가 수치심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실행 가능한 매뉴얼로 준비되어 있고, 또 그러한 순간의 고통을 극복하는 훈련을 해 본 경험이 있었다면, 그 긴박한 위기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쟁과 재해에 대비해서 매달 실시하는 민방위훈련처럼, 연간 1만5천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자살에 대비해서 자살예방훈련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살예방훈련은 생명의 중요성만을 말하는 자살예방교육과는 달리, 다양한 상황에 맞는 자살자의 심리현상과 그 순간의 심리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실행 매뉴얼을 훈련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오랜 병마와 추위 속에서 굶어서 죽어갔던 젊은 영화감독의 마지막 메시지는 결코 치욕도 아니고 수치도 아니다.

그녀는 남이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아들, 딸일 수도 있다. 그녀에게 음식을 구걸하는 것은 수치심이었지만, 타인에게 그것은 도와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었다. 그러므로 나와 너를 넘어서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치심은 이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과정에 불과하다. 통장잔고 3천원도, 중간고사를 망치는 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다.

만약, 그녀가 타인이 문을 두드리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타인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독려하는 매뉴얼만 있었다면, 아름다운 그녀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조속히 마련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더 이상의 외롭고 쓸쓸한 자살의 행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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