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유전적 특성
<팔공시론> 유전적 특성
  • 승인 2009.04.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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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오래간만에 찾아온 60대 후반의 환자가 기억난다. 10여 년 전 필자가 모발을 눈썹에 이식했는데 이식 당시 이미 남성 형 탈모증 즉 대머리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후에도 계속 탈모가 진행되었고 몇 년 전부터는 심었던 눈썹도 빠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모발을 채취했던 후두부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가로로 수 센티의 가느다란 흉터가 드러나 있었다. 이식 당시에는 후두부에 머리숱이 많았는데 탈모가 진행되면서 흉터가 보이게 된 것이다. 환자는 어릴 때 한센 병을 앓아 눈썹이 빠졌고 50대 초반에 후두부에서 모발을 채취하여 눈썹을 만들었는데 이식된 머리카락이 계속 자기 본래의 성질을 간직하고 있다가 빠지게 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2만 2천 개의 유전자를 물려받는다고 한다. 물려받은 대머리 유전자의 특성은 설령 모발이 다른 부위로 이식되더라도 그대로 유지되므로 뒷머리가 빠지게 되면 같이 탈모되는 신세이다. 이를 의학용어로 채취 부 우위성(donor dominance)이라고 하는데 본래 부위의 유전적 특성은 다른 부위로 이식되어도 그 새로운 환경에 맞춰 변하지 않고 이전의 특성을 그대로 보인다는 뜻이다.

이 환자에서 현재 남아 있는 뒷머리 폭은 5센티도 되지 않았다. 더구나 60대 후반이니 젊은 사람보다 대머리가 더 심하였다. 따라서 앞으로는 탈모 경향이 있는 경우 모발 이식 시 채취부위를 후두부에서도 목덜미에 가까운 가장 아래 쪽 후두부로 해야 할 것 같다. 유전적 정보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핏줄은 못 속인다는 말처럼 혈통의 특성은 변화하지 않는다.

다윈은 1831년에서 5년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관찰을 통해 진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가 관찰한 핀치 새는 원래 남미에 있던 한 종류의 새였는데 이 갈라파고스로 건너온 후 바뀐 환경 때문에 번식과 먹이를 구하는 방식의 차이가 생기고 이것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여 부리모양이 모두 다른 13종의 새들로 진화하게 되었다 .

자연은 생존과 번식에서 가장 잘 적응한 것들을 선택한다. 다윈에 의하면 더 잘 적응된 것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더 성공적이고 그 적응성을 후손들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자식들은 부모를 닮기 때문에 적자 생존된 특질을 보유한 개체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환경에도 좀 더 잘 적응하게 된다. 대머리인 사람은 일반적으로 머리숱이 많은 사람보다 수학적 재능이 높다고 한다.

아마 대머리도 변화된 환경 하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더 성공적이고 적응된 특질이 후손들에게 전달된 결과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환경에 의해 유전적 형질이 바뀌는 것은 긴 세대를 통한 자연선택 또는 자연도태라는 생존과 번식에서 가장 잘 적응된 것들을 선택한 결과이다.

생물체가 이 지구상에서 생존해온 기간에 비하면 인간과 인간의 유전 형질의 존속기간은 정말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아직 유전형질이 다른 부위로 옮겨지더라도 여전히 유지되는 우위성을 보이지만 이런 특성도 언젠가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바뀔지도 모른다. 동물세계에서는 생존 및 생식을 위한 본능 못지않게 회귀본능 또는 귀소본능으로 불리는 중요한 본질적 행동요소가 있다.

머리카락의 유전적 특성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태어난 곳에서 일정한 시기를 보내고 이곳을 떠나 청장년시기를 타지에서 보낸 후 다시 어릴 때의 기억이 있는 장소로 되돌아오는 것을 회귀본능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연어는 민물에서 산란 후 바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생의 마지막 순간 산란을 위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모천 회귀성’을 가지고 있다.

북태평양에서 생활하다가 때가 되면 후각적으로 각인된 고향의 강물을 향해 태양의 위치와 체내의 시계를 기준으로 한 태양 나침반을 이용하여 동해안 하천으로 되돌아오는 회귀본능은 신비롭기만 하다. 90-98%가 고향의 강물로 돌아온다고 한다. 연어가 하천으로 돌아오는 날짜는 비행기의 비행 스케줄처럼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같은 계통의 연어는 앞 세대가 회귀한 날짜와 거의 일치하는 날짜에 돌아온다는 것을 보고 이를 환경자극에 대한 유전적 반응으로 보고 있는 학자도 있다. 최근 일본 아오모리 대학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연어의 모천 회귀본능은 수중에 있는 아미노산 냄새 때문이라고 한다.

강물에는 식물 등 단백질에서 유래한 20여 종의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연어들은 강마다 각기 다른 아미노산의 농도차이를 후각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옛 말이나 어류들의 회귀본능 혹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즐기는 명절 문화는 동물의 본능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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