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장마철에 하는 횡설수설
<달구벌 아침>장마철에 하는 횡설수설
  • 승인 2012.07.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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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장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왠지 무엇인가에 무조건 고마움을 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장마철이 되면 `당신은 올해도 잊지 않고 우리에게 돌아오셨군요!’라고 저절로 독백을 하게 된다. 긴 장마 동안 이따금씩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내비칠 때의 느낌도 좋다. 살갗에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듯 신선한 바람이 스칠 때 몸의 상쾌함이란.

장마가 돌아온 것은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마는 뜨거운 여름의 무료함이 시작되기 직전 지구가 크게 한번 뒤척이는 현상이다. 뒤척이는 것은 살아있는 것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에 대해 자연이 보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장마가 올 때마다 내가 느끼는 깊은 안도감은 지구가 아직도 숨 쉬며 뒤척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이다.

생태계의 특징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숨쉬기 운동을 하는 것이다. 숨쉬기 운동의 본질은 순환이다. 순환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 무릇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쉬기 운동을 반복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 때 생명력의 비밀은 매번 동일한 순환의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창조성에 있다. 아마도 장마를 불러온 지구의 뒤척임도 생명력의 내밀한 충동에서 비롯되었을 터. 순환은 자연계만의 특징이 아니다. 사회적 현상도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순환이 과정이 필연적이다.

경제학자인 슘페터는 이를 사이클(cycle)이라고 부른다. 사이클은 동일한 패턴의 반복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창조적 과정을 내부에 포함하고 있다. 슘페터는 이러한 창조적 과정을 혁신이라고 부르고 혁신은 창조적 파괴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혁신을 통해 사회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방식을 빌면, 혁신이야말로 뒤척임 현상의 다른 이름이다. 사회는 반복적으로 뒤척임 현상을 보일 때 새롭게 진화할 수 있다. 오래되어 물러나야 할 것은 물러나고, 새로운 것이 그것을 이어받으면서, 그래도 고이고 맺혀서 풀리지 않는 곳은 뒤척임을 통해 해소될 때, 사회는 순환하고 생동한다.

장마 이야기로 시작해서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니냐고? 실은 생태적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장마가 찾아 온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하였다. 지구상에 불균형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 체계가 나름대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장마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피해나 물난리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없는 상황과 비교하면 걱정의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쓰고자 한 것이 본래 이 글의 의도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글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모양. 문득 자연 생태계의 불균형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사회도 하나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는데 불균형이라면 오히려 이곳에서 오히려 훨씬 심각한 만성적인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는 생각에 글이 꼬이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장마가 내가 일상의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위에 찾아와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소회를 불러일으키지만, 내가 일상의 밥벌이를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지역 사회에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불현듯 대구경북이 생명의 뒤척임도 없고 들쑥날쑥 숨쉬기 운동도 사라진 불임의 사막으로 변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위기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장마철에는 횡설수설도 용서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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