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이게 팩트야, 여기 어디에 정치가 있지?
<달구벌 아침>이게 팩트야, 여기 어디에 정치가 있지?
  • 승인 2012.08.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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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추적자’. 평소 TV를 보지 않는 나였지만 한번 `추적자’를 보게 되니 눈을 뗄 수 없었다. `추적자’는 오늘의 대한민국,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대 권력의 카르텔이 주무르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실을 솔직히 토로하는 드라마였다.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이 아버지 백홍석은 억울하게 죽은 딸의 누명을 밝힌다고 여간 고생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이나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수의를 입고 법정에 앉은 백홍석에게 죽은 딸이 환영처럼 등장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무죄”라고. 그래, 이 장면 눈물겹다. 기어코 딸의 진실을 밝혀낸 이 아빠도 장하고 아빠를 위로한 딸도 어여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추적자’는 동화가 아니었다. `추적자’는 부녀지간의 아름다운 해후와 함께 대한민국의 전도된 현실을 냉정히 보여주며 마무리되었다. `추적자’가 재현하는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 `추적자’가 재현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사적인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거대 권력과 그 권력이 세상을 농락하는 현실이다.

재벌과 정치권, 언론, 검찰 등 거대 권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백홍석 딸의 비명횡사는 사소한 사건이었다. 팩트는 분명했다. 백홍석의 딸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들은 대통령 후보로 나선 강동윤의 아내와 그의 젊은 정부였다. 이게 팩트였다.

그런데 놀랍다. 서회장과 강동윤 후보 등등이 이 팩트에 관심을 갖는 순간, 백홍석의 딸은 어느 순간 원조교제를 마다하지 않은 문제아로 언론에 공표되어 버린다.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강동윤은 물론 그의 장인인 서회장 역시 이 팩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니 서민 아빠 백홍석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백홍석이 원해서 추적자가 된 게 아니었다. 이 팩트가 거대 권력의 개입으로 전혀 다르게 왜곡되는 정황을 인지한 한 `착한’ 검사는 강동윤의 보좌관 신혜라를 이렇게 꾸짖는다. “이게 팩트야, 여기 어디에 정치가 있지!”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그 `착한’ 검사의 일갈을 압도하는 건 이 팩트를 부정하거나 은폐하려는 권력의 욕망이며 개입이다.

`추적자’의 강동윤과 서회장, 신혜라 등등의 정치는 시종일관 그들의 사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추악하다. 그 추악한 정치는 팩트를 논란과 시비 거리로 변질시키더니 결국엔 그 팩트를 증발시켜 버린다. 자, 물어보자. `추적자’가 재현하는 저 추악한 정치를 우리는 과장된 허구이며 상상의 산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추적자’가 재현하는 저 추악한 정치는 단지 드라마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는 게 우리들의 중론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혹은 벌어지고 있는 그 하고많은 사건들 중에 최초의 팩트 그대로 알려진 게 있기나 한 건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백홍석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딸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거대 권력과 맞선 백홍석은 어렵사리 사건의 진실을 밝혀냈지만 오히려 진실을 밝힌 대가로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팩트의 진실을 밝히려는 백홍석의 분투가 오히려 백홍석을 죄인으로 살아가게 한 것이다. 참으로 고약한 아이러니다. 반면 서회장은 몰락한 강동윤을 대신하는 또 다른 정권에서도 상당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로 묘사되고 있으니, 그는 마치 불멸의 권력을 소유한 황제 같기만 하다.

그렇다면 정말 뭐가 달라진 것인가? 딸의 명예를 회복했으나 수인이 되어버린 백홍석과 정권을 넘나들며 권좌를 지키는 서회장의 대비는 왜 허구로 보이지는 않는 걸까? 서민의 대변자를 자임하던 강동윤은 구속을 피할 수 없었지만 왜 그의 구속은 카타르시스의 장면으로 다가오지 않는 걸까?

강동윤의 빈자리를 또 다른 강동윤이 채우지 않겠냐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건재한 서회장과 또 다른 강동윤은 그들의 사적인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팩트를 가공하며 우리들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게 아닐까? “이게 팩트야, 여기에 정치가 어디 있지!” `추적자’의 대사가 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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