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정치적 연좌제
<대구논단> 정치적 연좌제
  • 승인 2012.08.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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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사극을 보면 양반 곁에는 늘 머리를 조아리는 종이 있다. 나들이 할 때 주인의 신발도 챙겨주고 길 안내와 보디가드 역할도 한다. 나는 TV를 보면서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양반이었을까 하인이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가 된 지금에도 오랜 역사적· 문화적 전통으로 인해 사회적 신분제도가 은연중 남아있는 곳도 있다.

색은 바랐지만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그 예로 들 수 있고 서구 사회에서 간헐적으로 터지고 있는 백색 우월주의자들의 끔직한 도발적 사건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비교적 늦게 근대 민주화 과정을 겪은 한국이 그나마 인권 본연적 처지에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없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경제 활동 측면에서 차별 아닌 차별을 받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이는 시장 경제 체제에서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목적으로 특정인에 대한 인권을 훼손하고 왕따 시키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와 사라졌지만 한 때 연좌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연좌제는 `이전에 특정한 사람의 범죄에 대하여 일가친척이나 그 사람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고 처벌을 당하던 제도’를 말한다. 필자와 가까운 친척이 육사에 합격했을 때 그 일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신원조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았다.

당시는 국가의 모든 제도나 시책에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진 때라 응당 그런 것이라 여겼지만 연좌제는 사회 계급제와 신분제를 촉진하는 정치 조작적 악제임에 틀림없다. 현시적으로 이런 제도를 활용하는 집단은 아마 북한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연좌제가 뭔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고 이것을 구태여 알게 할 필요도 없다. 대선과 같은 큰 선거의 계절에는 케케묵은 잡동사니 버전들이 횡행한다.

단골 메뉴인 ’농민의 아들이다`란 말은 고전에 속하고 ’내 아버지는 소장수였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통령하려는 사람이 자랑할 것이 그토록 없는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뭣을 했던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위해 뭣을 하겠다든가 비전을 제시하고 그 말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판에서는 상대방의 결점을 들추기 위한 각종 마타도어가 떠도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요즘 회자하는 우유주사라고 일컫는 프로포졸 수법으로 국민들을 일시적으로 마취시키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보면 정치에 대한 회의감만 더 하게 된다. 박근혜 대선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정치 공세 말들에서 연좌제를 연상하는 대목들이 발견된다. 5.16이 쿠테타냐 혁명이냐, 유신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도를 폭파하겠다고 발언 했을 당시 퍼스트레이디의 위치에 있었지 않았느냐는 등 등 아버지 때의 일을 자식에게 덤터기 지우려는 행태는 연좌제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민주통합당 모 국회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독도폭파 발언과 박근혜 대선후보자를 묶으려는 책임론 의도가 연좌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론에 “박후보가 대통령의 딸로서 정치적으로 많은 덕을 봤는데 내가 말한 것은 연좌제가 아니고 음서제다. 고려· 이조시대에 중신 및 양반의 신분을 우대하여 친족· 처족을 관리로 사용한 음서제가 박근혜에 해당된다.”라면서 말 꼬리를 돌렸다. 세련되지 못한 정치꾼의 말장난이다.

고 장준하선생의 사인 규명이 재론되고 있는 요즘 그의 아들이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정희시대에 아버지가 의문사 했지만 이는 박근혜 대선 후보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아버지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장준하사건이 박정희 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니 만큼 그 딸인 박근혜 후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박정희시대의 일은 지나간 일이고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선거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유권자에게 분명히 밝혀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버지시대의 일 까지 끌어오는 것은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져다주고 생산적이 못 된다. 야당의 대선 후보자가 결정되면 박근혜 후보 흠집 내기는 점점 더해 갈 것이다. 정치적 연좌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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