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사춘기 아들을 믿다.
<달구벌 아침> 사춘기 아들을 믿다.
  • 승인 2012.08.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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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처음 아들을 봤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눈을 겨우 뜬 아들은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저 아이가 내 아들이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었구나 싶은 마음, 그건 바로 감동이었다. 여유 없는 시간강사 시절에도 틈날 때마다 아들과 함께 여기 저기 나다녔고, 그러면서 아들이 잘 크고 있다 생각했다. 아들은 무탈하게 커주었다. 대견했고 키우는 보람과 재미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여기까지였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흐른 걸까. 그 귀엽던 아들이 어느새 중학생. 그것도 사춘기 절정의 중학생으로 아들은 확 변한 것이다. 저 녀석이 내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들은 훌쩍 커버린 것이다. 자신보다 키 큰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묘하다. 마냥 기쁘건 아니다. 혹시 저 녀석이 나를 우습게보지 않을까 혼자 의심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키만 커진 게 아니라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게 나와 아내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때론 저 녀석을 확 쥐어박을까 싶기도 했고 실제 아버지 역할 한다고 괜히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비참해지는 건 나였다. 뭔가 꼬인 거 같은데 뭐가 꼬인 건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영 알 수 없었다. 고민스러웠다. 누구한테 문제가 있는 거지? 아들? 아니면 나? 법륜스님의 책, 내로라하는 청소년 교육 전문가들의 책도 구해 읽어보고 동네 맥주 집에서 아내와 토론 아닌 토론도 했다. 도대체 저 사춘기 아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 고민이 이어지던 지난 7월 아버지의 기일로 고향을 찾았다. 영정 속의 아버지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어떤 장면이 툭하고 가슴을 후볐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시비 아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왜 이렇게 나에게 무관심하냐며 말이다. 아버지는 도통 나에게 성적표를 가져오라느니 커서 뭐가 되겠냐. 느니 묻는 일이 없었다.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엄부 스타일의 아버지. 그런데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확인하고 묻고 다짐받는 꼰대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터무니없이 대드는 중학생 아들을 가만히 보더니 웃기만 하셨다. 그랬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지 않았고 이게 뭐냐 저게 뭐냐며 꾸중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무던히 염려하면서도 나를 믿고 기다려 준 게 아닌가 싶다.

믿고 기다린다? 사실 부모로서 자식을 믿고 기다려준다는 게 쉽지는 않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시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용은 못될지언정 개천으로 떨어질까 걱정이 크다. 그래서 걱정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지적하고 가르치고 계몽하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이제는 알 듯도 하다. 아들에게 필요한 아버지는 아내와 공모해 은근히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아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아버지라는 것을.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분위기의 학교에서 시달리고 왔을 아들에게 이리해라 저리해라 꼰대 짓을 할 생각이 없다.

방법은 없다. 내 아들, 내가 안 믿으면 누가 믿어줄 건가? 내가 믿는 만큼 아들이 성장해줄 것이라는 것. 이제 나는 진짜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제는 아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아들의 기준으로 아들의 인생을 생각하기보다 어른의 기준으로 아들을 재단하고 판단한 내가 문제였다. 어른의 기준이라는 거? 그거 알고 보면 어른들이 자기체면 살리고 좋으라고 만들어낸 기준 아닌가? 그 찌질 한 어른의 허울을 벗고 나도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아들을 마냥 믿고 지켜볼 것이다. 그러다 아들에게 발등 찍히면? 뭐 방법이 있나, 그래도 믿어야지.

사춘기는 아들에게만 온 게 아니다. 이렇게 나에게도 왔다. 나도 사춘기 아들과 더불어 사춘기 아버지가 된 것이다. 이 사춘기 아버지는 이제 와서야 아들이 꿈꾸는 아들의 행복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 그 역할을 구질구질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 새로운 출발의 조건, 그건 아들을 믿고 또 믿는 것일 것이다. 아들의 모든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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