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지역 문화의 수준, 내빈의 수준
<달구벌 아침>지역 문화의 수준, 내빈의 수준
  • 승인 2012.08.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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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묵 수성아트피아 관장

행사장에 가면 꼭 내빈석이 있고, 내빈 소개 절차가 있다. 주로 중앙 정면이 내빈석인데, 행사 전부터 통제선으로 표시를 해두거나, 관계자들이 그 주변에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아서고 있다. 그러다가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이 되면, 좌석의 주인인 내빈들이 들어와 그 자리에 앉고, 드디어 행사가 시작된다. 그들이 앉기 전까지는 어떤 상황이 되어도 누구도 접근할 수 없고, 또 아무리 예정된 시간이 지났어도 행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행사가 시작되면 국민의례가 있고, 이어서 내빈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다. 주로 정치적 직위가 높은 사람부터 소개가 시작되고, 관계 분야 책임자들이 소개된다. 때에 따라서 내빈이 많아, 오랫동안 “000님 오셨습니다.”를 한없이 들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빈 중에도 선택받은 몇 사람은 무대 중앙으로 나아가 축사를 한다. 사실 내빈이 아무리 많아도, 축사를 하지 못하는 내빈(來賓)은 그저 내빈(內貧)일 뿐이다.

이와 같은 내빈석과 내빈 소개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행사를 개최한 실질적인 기여자에 대한 최소한 예의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과할 때 볼썽 사나와진다는 데 있다. 일반 관람객이 온 이유는 행사 자체를 즐기러 왔는데,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내빈소개를 박수를 치며 기다려야 하고, 또 뻔한 내용의 공치사를 지루하게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공짜 구경이라면 야 좀 참을 수도 있겠지만 유료로 정당하게 돈을 내고 왔는데도 그럴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몇 해 전 지방정부가 개최한 엑스포 행사장 내 공연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공연시간이 되었는데도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고, 더구나 중앙 핵심자리는 지방 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보다 약 10여분 늦게 검은 양복의 내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더구나 그 공연장은 내빈석으로 가는 별도의 통로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 관람객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야 했다. 순간적으로 관람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관객이 거의 쌍소리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고, 군중들은 야유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어디선가 작은 돌 하나가 날라들었다. 다행히 내빈 중 누구도 돌을 맞지는 않았지만, 돌에 맞았더라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극장에서도 가끔 벌어지곤 한다. 야외 행사나 축제장이 아닌 순수예술 공연장인 극장에서도 드물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직위가 높은 사람들이 오면 이를 공개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공연 관계자들을 만난다. 그러면 공연작품과 관계된 내용 외에 특정인을 지칭하여 일반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은 극장 예의에도 어긋나고, 그 분한테도 결례가 된다는 점을 누누이 말하지만,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준이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와 같은 소개를 받고 객석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내빈을 수준 아래로 평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주인은 공연을 하는 공연자와 이를 보고자 기꺼이 돈을 지불한 관객들이다. 그리고 모든 관객은 평등하다. 이와 같은 원칙은 전 세계 모든 극장의 공통된 관례이고 예의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 고위 공직자는 사전에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사전에 부탁하는 경우조차 있다.

더구나 소개받은 특정인이 정치적으로 선출되는 인사이거나 특정 종교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더욱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반 관객 중에는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쓸데없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극장은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

결국 수준 있는 관객도 중요하지만 수준 높은 내빈도 필요하다. 공연장에 올 때는 미리 30분 정도 일찍 와서 로비에서 일반 관람객들과 담소를 즐기고, 또 관계자들을 격려하거나 축하를 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서면 다른 관객들과 똑같이 공연을 기다리고, 또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좋다면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수준 높은 기량을 보여준 공연자들에게 환호의 박수를 치는 것이다. 분명 일반 관람객들은 그런 모습의 내빈에게 호감을 가질 것이다.

지역 문화의 수준, 공연자와 관객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공연장으로 오는 내빈들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제발 늦게 와서 내 자리 내놓으라고 하지 말고, 어둠 속에서 중앙 내빈석까지 더듬더듬 찾아가지 말자. 그리고 중간에 소개를 받아 일어서서 박수를 받으며 인사하지 말자. 공연장에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그날의 공연자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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