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문경의 논다매 사람들
<달구벌 아침>문경의 논다매 사람들
  • 승인 2012.09.0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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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문경의 희양산 자락에서 귀농하여 사는 후배가 있어 놀러갔다가 논다매 콘서트를 관람하는 영광을 누렸다. 콘서트라는 명칭은 공짜로 멋진 공연을 구경한 관람객으로서 내가 붙인 것이고, 실은 논다매라고 하는 소모임의 발표회였다.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기획하여 한바탕 노는 자리를 가진 것도 나에게는 놀랄만한 광경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그들에게서 더블어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맛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레퍼토리에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다.

논다매는 문경의 가은 지역에서 농사지으며 노는 사람들의 소모임이다. 논다매는 논 다매고 신나게 놀고 싶은 그들의 일상의 꿈이 반영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가 다가와서 너희 쫌 논다며 라고 말할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는 소망도 담겨있다. 나는 그날 밤 그들이 논을 다 매고 노는지 어떤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지만, 쫌 노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잘 노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서 어느 공연 팀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신명과 끼를 느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논다매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는 마을 밴드의 연주였다. 마을 밴드는 중학생과 고등학생 두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희양산의 멋진 바위 그림자를 배경으로 하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수직으로 쏟아지는 별빛이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연주는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들의 연주는 영국 리버풀의 뒷골목에서 밴드를 만들어 막 연습하기 시작한 비틀즈를 연상시켰다! 라고 근사한 말로 마무리 지어야 완벽한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갖추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러한 상찬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밴드는 연주하는 내내 무척 즐거워했고, 밴드를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공연에 대해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으며, 우연하게 그 자리에 초대된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한 공연을 지켜본 셈이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최고인 셈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후배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고등학생 밴드에게 기타를 가르쳐준 사람은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기타를 배운 그들이 공연하는 모습에서 몇 년 전 바로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후배는 즐거워하는 듯 했다. 귀농한 사람 중에는 실제로 서울에서 록밴드의 일원으로 활약한 사람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생 밴드가 연주를 할 때 남의 눈이 잘 띄지 않게 한편 구석에서 기타를 들고 표시나지 않게 약간은 서투른 연주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던 같다. 논다매 콘서트에서 공연한 밴드는 그들 스스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마을 밴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10년쯤 뒤에 논다매 콘서트에 다시 가고 싶다. 그때 후배의 아들이 중학생 밴드의 뒤편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후배 밴드의 서투른 연주를 표시나지 않게 도와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고등학생 밴드의 보컬을 담당하던 그 패기 넘치던 청년은 근사한 농사꾼으로 변신하여, 사랑스러운 아내를 동반하고 나타나 왕년에 쫌 놀아본 사람으로서 포스를 풍기며 이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만일 후배가 마을의 터줏대감의 넉넉함을 풍기며 풍물패의 상쇠가 되어 꽹과리 소리를 울리며 흥겹게 신명을 돋우고 있으면, 나는 그 옆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어깨춤을 추면서 장단을 맞추리라.

한국 사회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외국으로 사람을 몰아재끼는 일방향 동선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였고, 그것이 또한 성공한 사람의 표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시골로 돌아오고 있다. 밖으로만 질주하며 내달리던 위험한 사회적 충동이 이제 안으로 방향을 바꾸어 좋은 에너지를 만들며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문경 가은에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과 놀이와 문명의 순환을 실험하고 있는 논다매 사람들을 한국 사회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징후로 읽어야 한다. 아! 다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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