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눈물겹구나, 어르신들의 사랑
<달구벌 아침>눈물겹구나, 어르신들의 사랑
  • 승인 2012.09.1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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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다. 주말이 오면 나는 대구의 골목을 자주 찾는다. 대구가 연고지가 아닌 나로서는 대구의 골목과 길이, 그래 신기했다. `아니 대구에도 종로라고 이름 붙여진 길이 있었구나. 종로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이렇게 대구의 종로를 걷다보니 이르게 된 곳이 감영공원이었다. 지친 다리를 달랠 겸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들의 풍경이었다. 삼삼오오 공원을 차지한 어르신들의 풍경. 탑골공원에 와 있나 싶은 기시감이 들었다.

어르신들은 벤치를 차지해 담소를 나누거나 공원 한 쪽에서 장기를 두고 계셨다. 감영공원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거니와, 감영공원은 어르신들의 공원이라고 해도 크게 틀려 보이지 않았다. 공원 주변의 풍경도 어르신들의 취향과 어울려 보였다. 다방에, 허름한 식당에 감영공원과 그 주변은 `모던’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의 풍경이 빌딩과 스타벅스와 대형마트로 획일화되는 오늘날, 감영공원과 그 주변은 그 자체로 이채로웠다. 그런 감영공원에서 내가 본 건 어르신들의 사랑이었다.

지난 주말도 나는 대구의 골목과 길들을 오갔다. 교동시장을 슬쩍 눈 구경하고 읍성터를 지나 걷다보니 감영공원이었다. 어느새 저녁이 밀려와 있었고 가을이 왔나 싶을 만큼 선선했다. 바로 옆 벤치의 두 남녀 어르신들이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어르신들은 손자 손녀자랑에, 서로의 건강 염려에 그리고 누군가를 흉보며 저녁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자리를 피해 드리면서 두 어르신의 사랑이 깊어가기를 바랬다. 그러면서 살짝 두 어르신들의 얼굴을 일별했다. 어르신들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사랑의 욕망은 젊은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 어른이 계셨다.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는데, 쉽게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박 선생님은 어르신들을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묘사하면서도 그 쓸쓸한 당신을 살리는 건 또 다른 쓸쓸한 당신의 위로이며 격려 그러니까 사랑이 아니겠냐고 이 책에서 토로하고 있었다.

바로 이게 인간의 진실이라고, 아니 사랑의 욕망은 노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고 ??너무도 쓸쓸한 당신??은 호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그리는 어르신들의 사랑은 자신의 늙은 몸을 직시하며 결국엔 포기하는 식으로 결말 처리되고 있으니 사랑을 지속할 수 없었던 어르신들의 아픔이 독자인 나에게 그대로 전해왔다.

그래, 박완서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특권은 아닐 게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사랑이 어떤 특정 세대의 전유물처럼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랑은 저렇게 감영공원의 어르신들도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이자 감정이 아닌가 말이다.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쓸쓸히 살아가란 법이 없고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외롭게 죽어가란 법이 없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의 어머니는 황망해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황망은 영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우울증인가 이런 걱정이 들 정도로 어머니는 가라 앉아 버렸다.

그런데 아뿔사! 어머니에게 필요한 건 자식들의 어줍지 않은 효가 아닐 거라는 생각. 나는 더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황망과 고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였나, 고향의 어머니를 뵙고 집을 나서기 전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을 손에 쥐어 드리며 이런 말씀을 드린 일이 있다. “어머니, 이 돈으로 연애하세요. 재혼은 하지 말고 그냥 연애만 하세요. 어머니가 남의 집에 가서 밥할 일 있나요. 인생 즐기세요. 근데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한테 쉽게 보이진 마시고요. 남자들이 단순해요.” 나의 농담 아닌 농담을 듣던 어머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근데 네 아버지 같은 분이 있을까?”

어르신들의 사랑. 그 사랑 알고 보면 너무도 쓸쓸하고 외로워서 시작된 게 아닐까. 홀로되신 늘그막의 어르신들이 원하는 건 자식들 기준의 효가 아니라 당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위로해 줄 그 누군가의 사랑일 게다. 감영공원 어르신들의 사랑. 나는 그 어르신들의 사랑이 순간이나마 당신들을 되살리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 어르신들의 사랑을 열렬히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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