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청개구리의 고해성사’
<달구벌 아침>`청개구리의 고해성사’
  • 승인 2012.09.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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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환 변호사

한 달 전쯤부터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열어보고 또 열어보는 e-mail이 있습니다. 로스쿨 제자로부터 받은 e-mail인데요, `변호사시험 합격 후 어느 회사에 사내변호사로 채용되어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항상 제자들 챙겨주시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도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지만, 저는 그 e-mail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정교수가 아닌 겸임교수의 지위에서 로스쿨 강좌를 개설하였을 뿐이고, `딱히 잘해주지도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제 손을 거쳐 간 제자로부터 받은 e-mail이기에, 그 e-mail은 저에게 있어 그렇게 곱디곱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제자로부터 받은 e-mail을 읽어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숙연해져 고개가 절로 떨구어지곤 합니다. 앞서 저는, 제가 그렇게 곱디곱게 여기는 제자의 e-mail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도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표현했지만, 스승님들께 너무도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의 e-mail조차도 보내지 않는 못난 제자가, 다름 아닌 바로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 못났는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전형이라는 것에 이설(異說)이 없을 정도로, 재학시절 선생님, 교수님을 찾아가는 것을 저는 그렇게 멋쩍어 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교단에 서보고 나서야, 스승의 마음과 제자의 도리를 알게 된 저이지만, 아직도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저는 아마도 청개구리인가 봅니다.

파산관재인 업무를 하면서, 파산·면책을 신청한 40대 후반의 여성 채무자와 면담을 했습니다.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던 남편의 대출금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을 섰는데, 그 개인사업체의 부도 때문에 가족 모두가 함께 파산에 이른 사례였습니다.

우산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던 그녀는 얼핏 봐도 환자로 느껴질 만큼 안색이 너무도 초췌해 보여, 제는 “건강은 괜찮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우산공장이 성수기인 하절기에는 일이 많아 하루 평균 4시간도 못자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작업으로 하는 일 때문에 손목이 너무 아프고, 병원에서는 손목염증을 지속적으로 치료하라 합니다.

하지만, 손목염증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회사에서 알게 되면 비수기인 동절기에 인원을 감축할 때, 저를 감축대상 인원에 포함시켜 버릴 게 뻔한데, 그렇게 되면 비수기 때 벌 수 있는 월 소득 90만원도 벌 수 없게 됩니다. 감축대상 인원에 포함될까봐 두려워서, 근무강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고, 심지어 손목염증에 대해 이야기도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없이 침울해진 분위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저는 웃으면서 그 여성에게 “그래도 애들은 착하게 잘 컸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은 참았던 눈물을 봇물처럼 터트리되, 얼굴에는 한가득 밝은 미소를 지으며 “네, 애들이 너무 착해요. 부모로서 해준 것도 없는데, 지네들이 알아서 착하게 잘 커줬어요. 너무 고마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저희 남매들을 그렇게 힘들게 키우셨겠지요. 이제 30개월에 접어드는 제 아이의 사진을 바라봅니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나요? 저희 남매들을 키우시는 동안에 겪으셨을 저희 부모님의 힘겨움과 아픔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통증인 듯 아려옵니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저는 아마도 청개구리인가 봅니다.

며칠 전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70대 연배의 선배변호사님께서 80대 연배의 선배변호사님 두 분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신 후 직접 바래다 드리는 흐뭇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세분의 은빛 머릿결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70대 연배의 그 선배변호사님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아직은 청개구리인 제게 있어 꿈이련가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저는 아직 개구리 단계에 이르지도 못한 올챙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비록 뒷다리도 앞다리도 없이 꼬리만 길게 늘어놓은 올챙이일지언정, 개구리를 존경하는 올챙이가 되고자 합니다. 그 긴 꼬리가 추억 속으로 사라질 때쯤엔 올챙이를 존중할 줄 아는 개구리가 되고자 합니다. 비록 먼 훗날 청개구리가 되어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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