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문화人' 마에스트로 곽승 대구시향 지휘자
<와이드인터뷰> '문화人' 마에스트로 곽승 대구시향 지휘자
  • 대구신문
  • 승인 2012.10.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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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생 70년, 이유없는 숙명이었죠"
스쳐가는 잠시의 인연이나 찰나의 경험에서 평생의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10년 전 어느 여름날 송광사 단기출가 프로그램에서 만난 노승(老僧)의 경우가 그랬다. 지극한 고요와 평화의 단계인 삼매(三昧)의 경지가 저와 같을까 싶을 만큼 극진한 존경과 정성을 담아 부처에게 일배 일배 올리는 노승의 삼배는 충격이었다.

마에스트로 곽승 대구시향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는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헤아릴 수 조차 없을 만큼의 수많은 삼배(三拜)를 부처에게 올렸을 노승의 일상적인 삼배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일심(一心)의 경지와 지극한 정성이 녹아있다는 것이 큰 도(道)의 경지로 받아들여졌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서걱이는 가을바람에 가슴이 무너지던 어느 가을날 오후에 만난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의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곽승.

두 달여 휴식 후 단원들과의 첫 하반기 연주회 연습 중이라며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행복감에 젖어 있는 그에게서 10년 전 만났던 바로 그 노승의 실루엣이 겹쳐졌다.

연습 후 휴식시간의 짧은 인터뷰 중에도 그의 모든 촉수는 연습실의 대구시향 단원들에게로 향했
고, 하반기 첫 연주회의 레퍼토리인 고독한 가을 남자 ‘브람스’가 남긴 최고 걸작 ‘교향곡 제1번’에 취한 듯 황홀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연신 쏟아냈다. 단원들과 브람스의 음악을 만난다는 기쁨에 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도 끊이질 않았다.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곰삭은 나이다. 음악과 70년을 함께 했을 그가 브람스의 음 한 소절에 저렇듯 구름 위를 걷는 듯 순수한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는 것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아니,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곽승. 그와 음악과의 인연은 일찍부터 시작됐다. 하모니카와 만돌린 연주에 능숙하고 일상적으로 음악을 접했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 역시 일찍부터 악기를 시작했고, 중학교 때는 밴드부에서 심벌즈와 소고를 연주했다. 중학교 말부터는 트럼펫을 배우고, 고2때 서울시향 트럼펫 단원으로 선발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연주자에서 지휘자로의 전환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평생을 한길 음악인생을 걸어온 노(老) 음악가에게 음악의 의미를 묻는다면 우문(愚問)일까.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은 나의 일부분이었고, 세월이 지나면서 내 삶이 되었지요. 7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음악이 너무 좋고, 그 이유를 꼬집어라면 딱히 할 말이 없을 만큼 음악은 내게 숙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감지하는 것, 직업이면서 직업을 떠나 스스로 즐기는 것,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그것이 내게 음악이죠”라며 천진하게 웃었다.

곽승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깐깐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느슨하게 풀어지는 때가 있다.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제자들과의 만남이 그렇다. 학교에서 그는 자상하고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같은 교수로 어린 학생들의 음악적 스승이자 선배가 되고 있다.


그에게 ‘대구시립교향악단 지휘자와 교수로서의 지휘자 곽승의 두 얼굴의 속내가 무엇입니까’ 던지듯 물었다. 그는 “대구시향 단원들은 프로페셔널들이에요. 그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관객들에게 최상의 음악을 선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전문연주자들입니다.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단윈들이 관객들에게 최상의 무대를 선사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나를 통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가도록 해야 것이 나의 역할이겠지요. 당연히 엄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라면서도, “제자들은 공부중인 아마추어들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원석들로, 그들에게는 아직은 매서운 매보다는 음악에 대한 흥미와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그들과는 부드러운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에스트로(Maestro)’. 우리말로 ‘대지휘자’로 해석된다. 일반적인 지휘자는 ‘conductor’라고 부르는데 비해 경험과 실력이 월등하게 높은 지휘자에게는 특별히 ‘마에스트로’라는 극존칭으로 예우한다. 한국에서는 곽승 대구시향지휘자와 정명훈 서울시향지휘자 등이 포함된다. 곽승을 마에스트로의 경지로 끌어올린 음악적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지휘를 하려면 다양한 악기와 성악 등을 공부해야 하고, 화성, 대위법, 관현악법 등 기초적인 음악 이론도 공부해야 하지요. 이런 총체적인 자질이 바탕이 돼야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낸 곡 해석이 가능합니다. 또 서로 다른 악기를 지휘하는 연주자들의 섬세한 감각을 뽑아내고, 멤버들의 격차를 최소화해 최상의 하모니도 만들 수 있지요.”

대구시향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지나온 4년여.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매진행진을 기록하며, 대구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점이 큰 성과로 꼽힌다. 경험과 역량에서 부족했던 대구시향을 대구 클래식 음악의 자존심으로 끌어올렸다는 평도 듣고 있다. 세인의 평보다 조련사 곽승이 꼽는 대구시향의 변화가 궁금했다.

그는 “목표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운을 뗀후, “대곡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기초적인 음정, 박자, 음의 색깔, 작곡가의 의도에 맞는 곡의 해석 등 갖춰야 할 자질들이 많지요. 지난 4년은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연주회가 쌓여가면서 객석점유율이 증가했고, 단원들의 자부심과 자신감도 높아졌습니다”라며 지난 4년을 돌아봤다.

대구시향은 유아기를 벗어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왔다. 청년기의 절정을 넘어 성숙기인 장년기로 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곽승이 보는 대구시향의 분홍빛 청사진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좋은 지휘자들이 대구시향에 계속 와야 합니다. 뉴욕 필은 역대 지휘자들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영입했고, 그런 지원이 차곡차곡 쌓여 세계적인 필하모닉으로 성장했지요. 예산이 허용하면 좋은 지휘자와 좋은 연주자를 영입하는 것은 필수아닐까요. 실력 있는 전문가의 영입도 계속 진행해 구성원들 간의 수준의 발란스도 맞춰야 하고, 청중과 직접 소통하는 오케스트라로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교육차원의 레파토리와 어린이를 위한 콘서트 프로그램의 개발도 해야겠죠.”

어떤 분야든 성장을 위한 노력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음악도 예외일 수 없다. 우수한 지휘자와 연주자 못지 않게 그것을 수용하고 흡수하는 관객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기 때문.
대구가 최근 몇 년 동안 자치단체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문화예술인들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문화분야에서 급성장을 이뤘다. 동시에 관객들의 수준도 높아졌다는 평이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고 가야할 길은 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도시에서 수많은 관객들을 만난 그가 본 대구 관객의 현주소가 궁금했다.

곽승 대구시향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의 지휘하는 모습.

“대구에는 클래식 음악 감상 동호인들이 많이 있더군요. 가끔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수준이 전문가에 버금가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부산에 8년을 있었지만 대구분들만큼 깊숙이 음악을 감상하고 공부하는 동호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준은 높으나 아직은 일부계층이 분위기를 이끄는 단계다. 일반인이 클래식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은 역시 공연장을 찾는 것이 아닐까. “음악을 전하고 접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연주회에서 직접 연주를 감상하는 공연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특히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콘서트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배우는 것 또한 음악 공부에 매우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예술은 토양에서 나오는 것이고, 서양음악의 토양은 당연히 서양아니겠습니까. 서양음악을 뿌리까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음악의 본고장에 가서 공부하고 접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서양음악의 원류, 뿌리를 몸속까지 이해하는 바탕 없이는 동양인에게 서양음악은 수박 겉핥기와 같다는 것.

기본에 충실할 것도 함께 주문했다. 그는 “자신의 수준을 정확히 알고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설정해야 합니다. 소질이 없다면 빨리 그만둬야 인생에 마이너스가 줄어듭니다. 소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지요”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짧은 인터뷰가 이어지다 단원들의 연습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단원 100명의 시간을 일분인들 허투로 하겠냐며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황급히 연습실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 농익은 가을햇살이 어루만지듯 훑고 지나갔다. 서걱이는 가을바람에 무너져 내리던 가슴이 전염된 그의 행복감으로 밀물처럼 차올랐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약력

마에스트로 곽승은 열 여섯살에 서울시향 최연소 트럼펫 주자로 시작해 메네스 음대를 수석 졸업했다. 한스 스바로프스키의 지휘법을 수학하고 1970년부터 8년간 뉴욕 링컨센터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와 조프리 발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이후 1977년에 미국의 거장 로버트 쇼에게 발탁돼 애틀랜타 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거장 로린 마젤이 이끄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의 부지휘자로 선발됐고, 1983년부터 텍사스의 오스틴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14년간 재직하며, 같은해부터 10년간 오레곤의 선리버 뮤직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 대학, 뉴욕 메네스 음대, 뉴욕 퀸즈 대학의 교수로 재직한 경험도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부터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8년간 활동했고, 2004년부터 3년간 KBS교향악단 수석 객원지휘자를 역임했다. 2008년 10월부터 대구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며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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