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문화人' 수성아트피아 최현묵 관장
<와이드인터뷰> '문화人' 수성아트피아 최현묵 관장
  • 대구신문
  • 승인 2012.10.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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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엔 엄한 채찍질, 주위엔 조용한 카리스마로 주민의 축제연출
감성시대. 감성정치, 감성철학, 감성의학, 감성산업 등 감성이 대세다. 개인주의와 소비가 미덕인 시대적 산물이다.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던 시대에서 개인들의 통합이 공동체를 움직이는, 보다 향상된 개인의 위상이 감성터치를 부추기고 있다. 머리로 하는 ‘이성’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감성’의 중심에 ‘문화예술’이 있고, ‘문화예술’의 중심에 ‘인문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최현묵 수성아트피아 관장. 그가 주인공이다.

견고한 인문학적 바탕위에서 ‘감성’이라는 인문학의 응집된 코드를 끌어들여 공연예술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묵직한 인문학과 공연예술 이야기가 궁금해 도심의 단풍이 제법 운치를 더한 지난 17일 수성아트피아를 찾았다.

수성아트피아 최현묵 관장은 "문화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채워주고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인생의 길을 정하다.

최현묵. 그는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굳이 수식어를 붙인다면 ‘공연예술계의 만능엔터테이
너’ 쯤으로 불러도 좋겠다.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할지, 일에 대한 샘솟는 열정의 사나이라고 해야 할지, 남다른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배우, 스텝, 문화정책, 예술경영 등 그가 확장해온 영역은 공연예술분야 전반을 아우른다.

공연예술분야의 정점인 CEO의 위치에서 대구지역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시작은 연극이었다.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연극동아리 활동이 시초가 됐다. 1983년 극단 처용의 창단 공연인 연극 ‘비어 있는 곳으로부터 부는 바람’으로 배우로 데뷔해, 그 이듬해 삼성문예상 장막극 부문에 ‘메야 마이다’가 당선되면서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의 교직 생활 동안 연극의 대본과 연출을 맡으며 연극에 대한 끈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996년 10년여의 교직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공연예술가의 길로 나섰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접고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길을 걷겠다는 결정,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직생활동안 계속해서 연극 작업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하기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무대 일에 대한 열망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무대로 왔던 것 같습니다.”

◆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대형 문화행사들의 트렌드를 만들어가다.

그의 프리랜서 선언은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지방자치단체 주체의 굵직한 문화·체육 행사들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렸고, 십수년 동안 다양한 무대현장을 이끌어온 그에게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대규모 행사들은 기회의 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실행팀장 및 자문위원,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폐회식 제작단 연출,월드컵 대구문화행사 총감독, 수성구 맛·폭염 축제 총감독, 대구컬러풀 축제 감독, 경북도민체전 개막식 총감독 등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대구경북의 선 굵은 문화행사들을 섭렵했다.

지방자치 시대 개막 이후 타 지방자치단체가 벤치마킹 할 정도로 대구·경북이 관 주도 문화행사의 롤 모델을 만들어 나갔다. 그 현장에 최현묵, 그가 있었다.

공연장 무대에서 스타디움으로, 거리로, 대규모 세트장으로, 시민이 있는 현장 속으로 무대를 옮겨 역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그만의 원동력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일까. 그는 “과거의 공연은 극장 공연만 생각했지요. 하지만 저는 일상생활에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결혼식이나 사회적 이벤트나 문화행사도 하나의 공연이라는 보다 확장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요”라고 소개하고, “무대 밖의 더 넓은 무대는 새로운 대본, 새로운 시스템으로 기획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현장 무대에서의 거의 모든 장르의 경험과 스탭의 경험들이 총망라돼 활용됐고, 그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오페라 하우스 개관과 함께 오페라에 심취하다.

2003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관하면서 음악회와 오페라는 그에게 운명처럼 찾아왔다. 1996년에 국립극장 오페라 대본 공모에 당선됐던 그에게 음악 연출은 이미 낯선 분야가 아니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시대의 개막은 성숙된 오페라 제작여건을 만들어 주었고,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페라의 매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말한다. “오페라 대본을 쓰고 연출 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특히 연출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그는 “ 오페라에는 음악과 연기, 무대구조, 의상, 세트 조명 등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내가 작은 무대보다 오페라 무대처럼 큰 무대의 미학적 감성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강하다는 것을 오페라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큰 구도를 만들고 거시적인 공연을 올릴 때 행복감이 밀려오지요”라며 오페라 무한사랑론을 펼쳤다.

연극, 무용, 오페라, 국악, 뮤지컬 등 섭렵하지 않은 장르가 거의 없을 만큼 무대라면 자신 있는 그다. 통섭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갖췄다. 그렇기에 그 만큼 각 장르의 특성을 꼬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일까.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연극이나 오페라, 무용이 다 비슷할 것 같지만 실상을 조금씩 다릅니다. 연극과 무용은 몸을 쓰는 장르인 만큼 간단한 자기 세트와 의상, 분장은 혼자 다 합니다”며 연극을 특성을 짚었다. 이어 “오페라는 어떤 것도 직접 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입장과 퇴장도 가이드가 따라 붙을 정도입니다. 오페라는 오직 악기와 목에만 집중하지요”라며 오페라만의 독특함을 소개했다.

오페라 청라언덕 출연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최현묵 관장.

특히 오페라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렸다. 오페라바라기 다웠다. 그는 “오페라는 전체 시놉시스, 음악적 배치, 이중창, 오중창합창, 레퀴엠, 합창과 이중창이 많습니다. 사건의 선 굵기도 빨리 넘어가고 감정의 캐릭터도 극단적입니다. 희노애락에 대한 화법도 극적으로 설정됩니다. 연극의 섬세한 표현은 음악이 대신하지요”라고 설명했다.

◆ 최현묵의 아이디어의 보고는 ‘공부’.

97년에는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한 후 2008년 11년의 긴 학문적 도전이 있었다. 이론적 전문성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한 가족의 가장이며 불안정한 프리랜서 신분으로 석사과정에 진학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의 도전은 도대체 끝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그를 학교로 이끌었을까. “공부는 저의 인생의 하나의 일관된 주제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부를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에서 공연예술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제가 다양한 장르의 연출과 기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지독하게 파고든 공부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기반이 제게는 공부였습니다”라며 지난 세월을 반추했다.

공연예술학. 그의 전공이 생소하다. 그는 “공연에 대한 각 장르에 대한 이해, 제반 정책, 법률구조, 사회적 현장, 경영 등 공연에는 수많은 분야가 필요하다”고 운을 떼고, “공연예술학은 각각의 고유 장르를 가능하게 하는 학문적, 철학적, 현실적 토대를 제공하게 하는 공연예술분야의 CEO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공연예술분야의 통합, 통섭형 인재로 성장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공연예술탐색’, ‘문화예술교육과 지역문화정책’ 등의 책 출간과 언론사나 잡지 등에 기고도 많이 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공부의 연장선상이며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책은 그런 그의 꾸준한 글쓰기의 정기적인 매듭짓기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가 열심히 글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적 답사기를 보며 한국문화유적에 관심이 갔지요. 이후 한국미술책을 섭렵하고 현장을 다니며 유적의 건축학적 구조를 봤습니다. 그러면서 고려불화를 발견했고, 고려불화의 원색적인 화려함과 섬세함에 반해 고려불화를 파고 들었습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처럼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전후 역사와 사회현상 등 전방위적인 자료를 찾고 공부해야 합니다. 내 글쓰기는 그러한 공부의 산물들이고 나는 그것을 예술현장에 녹여냅니다. 예술과 공부의 연결, 이것이 내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지요”라고 결론지었다.

◆ 미래 공연예술은 인문학적 감성이 녹아든 주민참여형이 될 것이다.

지난 6일 대구 들안길에서 길이 1㎞의 초대형 김밥이 지역주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과 외국인들이 대거 참여해 시끌벅적한 축제가 됐다는 후문이다.

‘주민이 주인 되는 축제’. 이 이벤트의 기획자인 최현묵 관장이 내다보는 21세기형 미래 축제의 방향성이다. 그에 따르면 이 방향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제감정기 시절, 일본에 의해 단절된 우리의 축제문화에 이미 녹아있던 방식이었다.

그는 “일제시대 이전에는 주민이 축제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일제시대에 끊어졌던 전통을 관 주도로 다시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주민이 빠지고 관람형 축제로 변질된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서서히 민 주도도 넘어가면서 우리의 전통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주민이 주인 되는 축제를 확대하면 주민이 주인 되는 문화예술이 된다. 최현묵 관장의 문화예술 전반에 관통하는 철학이다. 현대인들의 행복은 돈과 명예보다 가치 있는 만족을 추구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는 “인간은 돈보다 사랑, 소속감, 꿈을 꾸고 이룰 때 행복을 느끼죠. 문화는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채워주고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죠”라고 강조했다.

그가 펼치는 시민들의 행복론.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관심은 그를 인간적으로, 예술적으로 성장시키는 원초적인 자원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에 빠졌고, 대학 때는 도서관의 모든 인문학 책을 다 읽겠다는 계획을 세울 만큼 인문학에 심취했습니다. 인문학의 강조점은 역시 인간입니다”면서 “이제는 단순기술만으로는 문화 트렌드를 앞서갈 수도 없고, 따라 갈 수도 없습니다. 어떤 분야든 인문학적 기초 없이는 가벼울 수 밖에 없고, 그 가벼움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며 인문학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리더십을 원천을 물었다. “먼저 나 자신부터 바로세웁니다. 나의 도전들이 욕망의 누더기에 불과하지 않나 항상 경계하고, 내 작업들이 가치나 철학,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고 엄격한 잣대로 채찍질합니다. 반면에 스탭들에게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가갑니다. 그들은 이미 프로이기 때문에 그들의 역량을 최대화 할 수 있도록 저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판을 짜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최현묵 관장 경력

· 대구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박사과정(공연예술학)
·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원회 공연팀장 및 자문위원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개·폐회식팀장
· 2000-2002 대구달구벌축제 실무기획단
·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폐회식제작단 연출
· 월드컵대구문화행상 연출감독
· 수성구 맛·폭염축제 축제감독
· 대구컬러풀축제 축제감독
· 대구국제오페라하우스축제 조직위원 및 집행위원
· 대통령상 표창(1999·경주문화엑스포/2002·월드컵 문화행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협동과정 겸임교수
· 위덕대학교 문화컨텐츠학부 겸임교수
·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분야 책임심의위원
· 현) 수성아트피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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